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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은 ‘성평등 올림픽’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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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은 ‘성평등 올림픽’이 될 수 있을까

입력
2017.07.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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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켄워시의 ‘커밍아웃 트위터’. 거스 켄워시 트위터 캡처
거스 켄워시의 ‘커밍아웃 트위터’. 거스 켄워시 트위터 캡처

2014 소치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은메달리스트 거스 켄워시(26ㆍ미국)가 2015년 10월 23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단 세 단어가 미국 스포츠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켄워시는 그날 새벽 “나는 게이다(I am gay.)”라는 짧은 코멘트와 함께 자신이 표지모델로 참여한 ESPN매거진의 사진을 올렸다. 당시 매거진의 특집 내용은 스포츠계 커밍아웃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마초의 세계인 프리스타일 스키에서 정체성을 숨기고 활동하는 게 힘들었다.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6일(한국시간) 미국 타임지는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을 준비하고 있는 동성애자 스키선수 거스 켄워시의 커밍아웃 이후의 활동을 인터뷰했다. ☞관련기사

켄워시는 자신의 신념을 위한 일이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가장 걱정됐다고 커밍아웃 당시를 회고했다. “같이 운동을 하는 동료들이 방을 함께 쓰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나” “후원 기업들이 계약을 취소하면 어쩌나”하는 게 그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미국 전역에서 켄워시에게 예상을 뛰어넘는 지지를 보냈다. 특히 스키 팬들과 동료 선수들이 보내는 응원에 힘이 났다. 그는 “물론 부정적인 반응이 없지 않았지만 그대로의 나를 지지하는 반응에 압도됐다”고 말했다.

그가 미국 대표로 출전해 은메달을 딴 소치 동계올림픽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가장 큰 정체성의 혼란을 준 대회였다. 러시아는 올림픽 개막 8개월 전인 2013년 6월, 동성애를 선전ㆍ전파하는 것은 물론 동성애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언행을 해도 벌금은 물론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반(反)동성애법’을 통과시켰다. 당시 러시아는 국제적인 거센 비난을 받았고, 인권단체와 소비자들은 올림픽 후원기업을 향해 항의를 펼쳤다. 이에 더해 일부 선수들과 각국 정상들은 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을 펴기도 했다.

선수들에게 가해진 압박은 더욱 심했다. 켄워시는 선수 미디어 트레이닝 도중 무지개 색으로 손톱을 칠한 선수에게 “당신은 스포츠를 위해 여기 온 것이다”라는 핀잔을 듣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또한 “만약 인터뷰에 LGBT(성적 소수자)와 관련된 물음이 나오면 답변을 피하라”는 구체적인 지시사항도 암기해야 했다. 특히 그가 경기를 마치고 시상대에 오른 날은 2014년 2월 13일, 발렌타인데이 하루 전이었다. 인터뷰 도중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무의식적을 “he”를 입 밖에 내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내내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를 앵무새처럼 외웠다. 이때의 혼란은 그가 2년 후 전격적으로 커밍아웃을 결정한 계기가 됐다.

거스 켄워시. AP연합뉴스
거스 켄워시. AP연합뉴스

올림픽에서 겪은 켄워시의 혼란은 애매한 ‘올림픽 정신’의 모순 자체에서 기인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일체의 정치적ㆍ종교적ㆍ인종차별적 언행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내세우고 있다. 동성애가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으로 손톱을 색칠하거나,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세리머니를 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행위로 인식될 경우 메달 박탈 등의 징계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작 IOC 헌장(Charter)은 인종, 성(姓)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 소치 올림픽에서 동성애자 선수들이 “우리의 올림픽 정신은 이런(반동성애법을 지정하는)것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 이유다.

그가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한다면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첫 남자 동성애자가 된다. 동성애자 선수 중 동계올림픽에 참가해 처음으로 메달을 따낸 이는 네덜란드의 스피드 스케이팅 스타 이레너 뷔스트(30)다. 뷔스트는 소치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3000m, 2010 밴쿠버올림픽 500m, 2006 토리노올림픽 3000m까지 올림픽 3개 대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켄워시는 “커밍아웃을 하면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비춰질 것이 무서웠지만 이제는 뷔스트에 이어 역사의 무게를 완전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켄워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독설을 날렸다. 평창 올림픽 이후 백악관에 초청받으면 갈 것이냐는 질문에 “안 간다. 나는 미국을 대표하는 것이 자랑스럽지만, 트럼프 정부에 가짜 지지를 보내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미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 때 두 걸음 전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한 걸음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평창에 대한 기대도 드러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좋은 올림픽이 될 것”이라며 “더 좋은 스포츠를 위해 다 함께 전진해야 한다”고 평창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소치에서 성평등에 대한 ‘올림픽 정신의 모순’을 경험한 켄워시의 시선은 이제 평창을 향하고 있다.

오수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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