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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누가 시민인가

입력
2017.07.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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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미국의 한 원자력발전소를 방문했다. 현지 직원이 나와 한국의 방문단을 위해 브리핑을 했다. 질의응답도 이어지고 통역까지 병행됐지만, 원체 어려워 이해가 쉽지 않았다. 동행한 우리 쪽 전문가에게 브리핑이 끝난 뒤 보충 설명을 요청했다. 전문가의 설명은 성의 없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알아듣지 못한다는 취지의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너무 답답해서, 이럴 거면 굳이 먼 타지까지 왜 왔겠냐고 따졌다. 전문가는 불쾌한 내색을 비쳤다.

지난달 한 원자력 심포지엄에선 연사로 나선 원로가 성(性)적 표현을 쓰며 원자력 종사자들의 노고를 치켜세웠다. 업계 종사자들로 대부분이 채워진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여성 참석자도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고, 해당 연사는 제한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원자력의 옛 영광을 ‘찬양’했다. 보다 못한 기자가 주최 측에 부적절한 표현 자제와 시간 준수를 요청했다.

특정 기술 분야 종사자의 이미지는 종종 그 기술 자체의 이미지가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원자력은 실패했다. 대다수 시민이 원자력 전문가를 믿지 못한다. 원전 부품 납품 비리가 극히 일부의 문제였다 해도, 원자력계가 스스로 쌓은 ‘장벽’만으로도 시민의 불신은 인과응보다. 지식과 경험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의 고압적 태도와 ‘그들만의 추억 나누기’는 범접하기 어려운 기술에 대한 기피와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역시 2년 전, 원전 운영허가 심의를 앞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에게 한 환경단체 이름으로 택배가 왔다. 택배 안에는 탈핵 문구가 쓰여진 철제 의자와 원전 사고 기록이 담긴 책자가 들어 있었다. 의자에 앉아 원전 사고를 생각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라는 요구도 적혀 있었다. 당시 위원들은 이를 위협과 협박으로 받아들였다. 부당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말아야 할 위원들을 상대로 특정 의사를 일방적으로 강요한 행위였다. 비슷한 시기, 어떤 반(反) 원전 인사들은 회의를 마치고 귀가하는 원안위 위원을 기다렸다가 차량을 막아서기도 했다. 간신히 빠져 나갔다는 그 위원은 순간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고 했다.

반원전 목소리에 여느 때보다 힘이 실린 요즘, 일부 환경단체 인사들은 원자력 공공기관이나 유관 부처에서 공공연한 기피 대상이 됐다. 상대방을 깔아 내리는 듯한 언행과 거만한 태도를 보이고, 규정마저 무시하는 탓이다. 공직 사회에선 정부의 반원전 기조가 확고하니 참아야 하지 않겠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온다.

환경단체들은 스스로를 종종 시민으로 일컫는다. 옳다고 여기는 가치관을 시민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정책에 반영하길 요구한다. 하지만 어느 한쪽 가치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면서 그것이 존재의 이유가 되는 집단이 개방적이고 중립적인 의미를 포함한 일반 시민이라고 보긴 어렵다. 반대 가치를 지지하는 쪽에 대해 배타적 태도로 일관한다면 더욱 그렇다. 차라리 이해관계자에 가깝다.

올 초 한 포럼에서 토론자로 나선 환경단체 인사가 원자력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내용이 부실함을 지적한 적이 있다. 당시 객석에 앉은 전문가 두 명이 해당 사이트를 스마트폰으로 접속해보더니 그 지적이 사실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해당 인사와 전문가들 간 거리는 10m도 채 되지 않았지만, 소통은 없었다. 한쪽은 치우친 설명을 했고, 한쪽은 이를 묵인한 채 포럼이 끝났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양쪽은 모두 자기 목소리 내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다.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 과정에 전문가와 환경단체를 포함시켜야 할지 말지에 대해 정부의 말이 계속 엇갈린다. 양쪽 다 시민을 대표하지 못하지만, 공론의 장엔 모두 들어와야 하는 게 맞다. 단 정부는 어느 쪽으로든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정부를 믿는다.

임소형 산업부 차장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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