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이후 한반도 주변이 ‘미일 대 중러’의 갈등 구도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미중 간 인식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한반도가 강대국 간 힘겨루기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의 ICBM 도발에 대한 판단과 해법을 놓고 정면충돌하고 있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강력한 추가 대북제재를 요구하는 한편 군사적 옵션을 포함한 독자행동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반면 중국은 5일(현지시간) 안보리에서 류제이 유엔 주재 대사가 “대북 군사 수단은 옵션이 아니다”라고 밝히는 등 ICBM에 대한 성격 규정 자체를 유보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법을 강조하면서 군사적 대응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양측 간 힘겨루기의 한 축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논란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30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사드 배치 계획을 재확인했고, 중국은 한중 정상회담을 겨냥해 사드 배치 철회 요구의 수위를 부쩍 높이고 있다. 사드 논란도 미중 양국의 북핵 해법 차원에서 갈등 요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미중 갈등은 자칫 진영 간 대립구도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동아시아의 주요 군사동맹이자 북한의 잇따른 도발을 기화로 재무장을 추진중인 일본을 끌어들였다. 이에 맞서 중국은 옛 소련의 명성을 재연코자 하는 러시아를 파트너로 삼았다. 블라디미르 사프론코프 유엔주재 러시아 차석대사도 이날 안보리에서 “군사 수단은 배제되어야 한다”라며 중국과 장단을 맞췄다.
사실상 한반도 주변 4강이 뚜렷한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반도 주변 정세가 ‘미일 대 중러’ 구도로 흘러갈 경우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은 큰 벽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흔들지 않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북한의 추가도발 가능성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남북 간 대화의 여지 자체가 축소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은 오는 11월 시진핑(習近平) 2기 체제가 출범할 제19차 공산당대회를 앞두고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앞으로 미중 간 외교ㆍ경제분야 갈등이 심화하는 것은 물론 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대립의 양상도 짙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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