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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의 프레임] 시간이 마음에게 부리는 마술

입력
2017.07.0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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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묘하다. 시간은 온갖 신통한 마술을 우리 마음에 부리는데, 개중에 몇 가지는 알아두면 꽤 쓸모가 있다. 가장 잘 알려진 마술로는 웬만한 것들을 사소하게 보이도록 하는 마술이 있다. 분명 언젠가 우리를 격하게 흥분시켰던 사람도 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이해가 되곤 한다. 결코 아물 것 같지 않았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 끝내 보내지 말아야 할 이메일이나 문자를 보내고 나서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후회막심이었던 사람이라면 분노를 가라앉히는 시간의 힘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시간에게서 얻은 인생의 교훈은 격한 감정 상태에 있다면 가급적 결정을 미루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지금 이메일과 문자로 상대와 다투고 있다면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답하는 것이 현명하다. 아예 상대방을 하루 이틀 정도 차단해 놓는 것도 방법이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을 늘리는 작업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자극에 반응하는 시간을 연기하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간이 부리는 마술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최고의 마술은 선택과 결정의 과정에서 일어난다. 어떤 일을 선택하고 결정하기 전에 우리는 그 일을 하면 좋은 이유와 하면 좋지 않은 이유를 따져보고 그 둘의 경중을 재어 본다. 백지 위에 수직으로 선을 긋고 해야 할 이유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좌우에 적어보는 행위는 인간 합리성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이 과정에 시간이 은밀하게 마술을 부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선택과 결정 과정에서 시간이 부리는 마술은 이렇다. 어떤 일이 현재 시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일일 때 우리 마음의 눈은 그 일을 하면 좋은 이유를 압도적으로 많이 보게 된다. 하면 좋지 않은 이유들은 의식의 지평선에 놓이지 않는다. 따라서 비교적 먼 미래의 일은 하기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 일이 객관적으로 좋아서가 아니라 결정의 시점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이 바로 ‘당장’ 일어난다거나 ‘가까운 미래’에 일어난다고 가정하게 되면, 우리 마음이 보는 찬반 이유의 비율은 역전된다. 해야 할 이유보다는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편의 손을 들어주는 이유들이 마음속에 잘 떠오르게 된다.

예컨대, 매일 아침 학생들에게 1㎞를 뛰게 하는 제안을 생각해 보자. 당장 다음 달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면 건강에 좋다거나 학업 스트레스를 줄여준다거나 행복감을 높여준다 같은 찬성 이유도 생각나겠지만, 매일매일 운동복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이나 학교의 열악한 운동 환경, 체육교사의 부족, 혹은 달리기를 싫어하는 학생들의 선택권 등 반대 이유도 만만찮게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매일 아침 달리기를 다음 달이 아니라 ‘10년 후’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면?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그 제안은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같은 일이라도 그 일이 발생하는 시점이 현재로부터 가까운지 먼지에 따라 우리 마음의 눈이 발견해 내는 찬반의 이유는 확연히 달라진다. 수긍이 가지 않는다면 다음의 질문을 떠올려보자.

아프리카로 가족 여행을 떠난다면? 지금 vs. 나중

주말에 등산을 가야 한다면? 이번 주 vs. 다음 달

서점에서 독서를 해야 한다면? 오늘 저녁 vs. 한 달 후 어느 날 저녁

어느 경우든 그 일을 하기로 결정할 가능성이 높은 쪽은 후자이다. 임박한 일일 경우에,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이는, 하지 말아야 하거나 할 수 없는 이유들이 먼 미래의 일이라고 가정하면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마음에게 부리는 이 마술은 중요한 교훈 하나를 알려 준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임박해서 설득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교훈이다. 그들이 변화를 거부하고 안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임박한 일의 경우에는 굳이 해야 할 이유를 잘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을 설득해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부지런을 떨어서 훨씬 일찍 설득을 시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일의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 보고, 부정적인 측면을 덜 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변화를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국가와 기업, 그리고 학교의 정책들이 그래야 한다. 당장 해야 한다고 급하게 설득하면 아무리 중요한 정책이라도 적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어렵다. 우리의 마음이 시간이 부리는 마술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합의해주지 않고 동참해주지 않는다고 상대를 비난 할 것이 아니라, 미리 설득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소통과 설득은 진정성도 중요하지만, 타이밍도 매우 중요하다. 시간이 마음에게 부리는 마술을 이해한다면, 중요하다는 이유만 내세운 채 임박해서 급하게 설득하고, 여의치 않으면 상대를 비난하는 행태를 멈춰야한다. 미래의 일들을 미리 계획하고 미리 설득하는 부지런함이 시간의 마술을 푸는 열쇠이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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