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한국 축구의 소방수로 등장한 신태용(47) 국가대표 감독이 남은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두 경기에 모든 걸 걸겠다고 다짐했다.
신 감독은 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월드컵 본선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 당장 앞으로 두 경기에서 이기는 것만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월드컵 최종예선 A조에서 본선 마지노선인 2위는 유지하고 있지만 남은 두 경기(8월 31일 이란 홈-9월 5일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삐끗하면 3위로 떨어진다. 3위가 되면 B조 3위와 플레이오프를 거친 뒤 이기면 또 다시 북중미 4위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한다. 더구나 이란,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는 주축인 손흥민(25ㆍ토트넘)과 기성용(28ㆍ스완지시티)가 못 뛸 수도 있다. 둘은 최근 수술을 하고 재활 중이다. 기성용과 손흥민이 못 나올 경우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신 감독은 “일단 기성용, 손흥민과 통화를 했고 재활 경과를 유심히 보고 있다. 두 선수가 만약 뛰지 못 한다고 해서 유망주를 뽑기는 어렵다”며 “일단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에 성공하고 나면 이후에 평가전 등에서 유망주들은 자연스럽게 발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신태용 감독과 일문일답.
-감독 부임 소감은.
“힘든 시기에 믿고 감독을 맡겨주셔서 감사하다. 한국이 9회 연속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도록 이 한 몸 바치겠다.”
-계약 기간이 1년이다. 독이 든 성배를 수락한 이유는.
“감독직을 수락할 때는 계약 기간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해야 된다는 생각만 한다. 두 경기에 ‘올인’하겠다. 만약 월드컵 진출에 성공하면 더 좋은 계약 기간이 따라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손흥민, 기성용의 이란전 출전이 불투명하다.
“손흥민과 기성용은 부상이라 재활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두 선수와 통화했고 재활 상태를 면밀하게 체크하고 있다. (두 선수가 나서지 않으면 어린 선수를 발탁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유망주를 무턱대고 쓰긴 위험 부담이 있다. 최종예선 마치고 평가전 때 다양한 선수들을 활용할 계획이다.”
-선수 선발 기준은.
“슈틸리케 감독과 나는 지도 철학이나 스타일이 다르다. 슈틸리케 감독 아래서 중용됐다고 해서 무조건 발탁할 거란 생각은 잘못 됐다. 신태용의 스타일에 맞는 선수들을 뽑을 생각이다.
-코칭스태프 인선 계획은.
“코치가 감독만 보좌하는 시대는 지났다. 감독이 생각하지 못했던 전술 전략 충언도 해줄 수 있는 코치로 뽑겠다. 또 감독과 끝까지 같이 갈 수 있는 코치를 영입해야 한다. 우리 팀이 하나가 되려면 코칭스태프부터 원 팀이 돼야 한다. (기존의 설기현 코치와는 통화 했나. 김남일, 전경준 코치가 합류하느냐는 질문에) 설 코치와는 아직 통화 안 했다. 전경준, 김남일 코치 모두 후보 군에 있다. 여러 각도에서 코치를 고민 중이다.”
-수비 안정화가 급선무인데.
“올림픽과 20세 이하 대표팀을 맡았을 때는 연령별로 한정된 인원 안에서 뽑아야 해서 고민이 많았다. 국가대표는 최고의 선수들로 수비진을 구성할 수 있다. 수비 조직력만 잘 다듬으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손흥민의 활용 방안은.
“개인적으로 손흥민은 굉장히 좋은 선수라고 본다. 토트넘에서 플레이를 왜 태극마크만 달면 보여주지 못하느냐는 지적도 알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과 좀 다르게 활용할 나만의 생각은 있다. 경기장에서 보여드리겠다.”
-공격 축구가 신 감독의 철학인데, 남은 두 경기는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이번 두 경기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안정적으로 준비하겠다. 1-0도 좋으니 실점을 절대 하지 않으면서 이기는 경기를 해야 한다.”
-K리그 선수들 활용 방안은.
“한국, 일본, 중국, 중동, 유럽 어디에서 뛰든 상관 없다. 대표팀이 소집될 때 최고의 기량과 경기력을 가진 선수라면 선발하겠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더라도 내 축구에 맞다면 뽑겠다. 개인적으로 K리그 수준은 절대 낮지 않다고 본다.”
-그 동안 대표팀이 부진했던 이유를 분석한다면.
“대표팀이 소통이 안 된다고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대표팀 감독대행으로 두 경기를 치를 때(2014년 9월)도 그렇고 코치로 있을 때도 선수들과 소통은 충분히 잘 됐다. 슈틸리케 감독이 외국인이라 언어 소통이 조금 안된 점이 있지 않았나 생각 한다. 선수들의 눈높이에 최대한 맞춰 소통하겠다.”
-소통이 문제가 아니라면 대표팀 부진의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그런 이야기를 하면 내가 모셨던 전임 감독에 대해 계속 말하는 것 밖에 안 된다. 개인적으로 전술 부재가 좀 있었다고 본다.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양해해달라.”
-이란전을 사흘 앞두고 소집할 수밖에 없는데.
“감독대행으로 대표팀 경기를 두 번 지도해보고 느낀 점은 우리 선수들은 좋은 컨디션과 최고의 기량을 갖고 있다는 거다. 또 짧은 시간이지만 좋은 전략으로 나서면 스펀지처럼 잘 빨아들일 능력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조기 소집도 검토하나) 그건 감독인 내가 또는 축구협회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시간을 강제로 빼낼 수는 없다. 짧은 시간에 강하게 내가 원하는 걸 주입해서 원하는 축구를 할 수 있게끔 잘 준비하겠다.”
-결국 지도자로 최고 자리인 국가대표 감독이 됐나. 또 선수로 월드컵에 못 나가 지도자로 도전이 더 남다를 텐데.
“그저께(기술위원회가 열린 4일) 정오가 넘었는데도 김호곤 기술위원장께서 전화가 없길래 ‘안 됐구나’ 하고 마음 편하게 있었다. 그런데 오후 1시30분쯤 안기헌 전무께서 만나자고 하길래 느낌이 왔다. 안 전무님을 만나러 가며 속으로 ‘신태용 잘했어.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선수로 월드컵에 나가지 못한 건 정말 한으로 남는다. 하지만 나에게 또 다른 동기부여라 생각했다. 선수로 출전하지 못한 월드컵을 감독으로 가서 더 많은 걸 이루라는 뜻으로 알겠다. 한국 축구가 2002년에 4강, 2010년에는 원정 첫 16강을 이뤘는데 꼭 월드컵에 가서 그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국 축구가 위기라고 한다. 맞다. 절체절명의 위기다. 하지만 이제 희망을 볼 수 있게 언론도 응원해달라. (비판적인 기사를) 보는 선수들 당사자 입장에서 힘든 부분 많다. 저도 감독으로 첫 출발인데 너무 비판하지 마시고(웃음) 희망을 많이 주시고 우리가 다 함께 뭔가 할 수 있다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선수들이 절대 아시아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능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응원해 달라.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만약 두 경기 결과가 잘못되면 모든 질타와 욕을 제가 받겠다. 대신 경기하기 전에는 우리 선수들이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게 응원해 달라.”
윤태석 기자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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