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사단의 실험이 제대로 통했다. 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은 여행과 먹방 등 힐링 예능을 연이어 선보였던 나영석 표 예능과는 궤를 달리한다.
작가 유시민, 맛 칼럼리스트 황교익, 소설가 김영하, 과학자 정재승까지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지식인들이 만나 국내를 여행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자연스럽게 이들의 가진 지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장되고 시청자들은 조금의 지루함 없이 흥미롭고 쓸데없는 이들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지난 5일 한국일보닷컴은 '알쓸신잡'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나영석 PD를 만나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제작발표회 때부터 '알쓸신잡'의 재미를 보장했다. 시청률도, 화제성도 높다. 인기요인은 뭐라고 보는지.
A. 지금까지와는 안 하던 스타일의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뿌듯하기도 하다. 그동안은 늘 연예인과 작업을 해왔다. 프로그램 안에서 연예인의 행동이나 능력, 캐릭터가 주목받았다. 이번에는 각자의 지식을 나누고 말하는 콘텐츠였고 먹일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각자 지식에서 정점에 오른 분들이 쉽고 편하게 이야기를 하니까 편하게 들으며 재미를 느끼시는 것 같다.
Q. 팟캐스트 '지대넓얕'이 떠오르더라.
A. 초반 포맷을 구성하는데 참고한 부분이 당연히 있다. '알쓸신잡'은 팟캐스트가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거다. 팟캐스트 특성이 누가 나오느냐가 아닌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다. 우리 프로그램 역시 그런 면이 강하다. 누군가의 지식만으로도 재미를 줄 수 있겠구나 싶었다.
Q. 연예인이 아니지만 선생님들의 캐릭터가 확실해서 그걸 보는 재미도 있더라. 예상했던 그림인지.
A. 전혀 예상 못 했다. 이분들의 성격 같은 건 연예인과는 달리 공개된 부분이 아니다. 처음 섭외를 할 때 그분들이 이뤄놓은 지식을 가지고 접촉을 했다. 결과적으로 팟캐스트와는 다르게 영상으로 보여지는 부분이 주는 재미가 있었고, 여행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캐릭터가 드러날 수밖에 없더라. 플러스 요소가 됐다. 물론 그 중심에는 국민적인 인지도를 가진 유시민 선생님의 역할이 컸다.
Q. 유시민 작가와 황교익 칼럼니스트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재밌다. 늘 그러는지.
A. 물론 늘 그러시진 않는다. 실제 대화에 들어가면 각자의 생각과 견해를 나눈다. 두 분이 티격태격할 때는 음식과 낚시 이야기 뿐이다. 취미나 일상의 영역에서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귀엽고 재밌더라.
Q. 방송을 통해 다들 처음 만났다고 들었는데 굉장히 친해 보인다.
A.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지식 면에서 어느 정도 톱에 오른 분들은 서로 모여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들었다. 선생님들도 '알쓸신잡' 전에 이미 그런 자리를 많이 가졌기 때문인지 프로그램에 쉽게 적응하시더라. 이제는 많이 친해졌다. 유시민 선생님은 최근 황교익 선생님과 낚시를 다녀오기도 했다. 한 마리도 못 낚았다고 투덜대시는 걸 들었다. 정재승 박사와 김영하 작가는 이전에 모임에서 알던 사이다.
Q. 많은 이야기와 담론이 교류한다. 방송에 내보내려고 할 때 가장 우선하는 게 있다면.
A.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떤 이야기는 기존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또 논의를 타고 넘어가지 못하는 주제는 짧게 처리한다. 반면에 이야기에 살이 붙고 확장되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부분은 방송으로 잘 살리려고 한다.
Q. 자신의 지식에 대한 확고함을 가진 지식인들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언쟁으로 번지지는 않는지.
A. 가끔 그럴 때도 있는데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이분들 정도 되면 이미 다른 사람에게도 다른 의견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고 인정하더라.
Q. 유시민 작가가 가장 말을 많이 하나.
A. 그렇게 보이는 이유가 있다. 정재승 박사는 과학에 대해 김영하 작가는 이야기에 대해, 황교익 선생님은 음식에 대해 말한다. 근데 유시민 선생님은 전 분야에 대해 두루두루 다 안다. 기본적으로 지식의 양이 방대하다. 그러다 보니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밖에 없다.
Q. 나영석 사단이 보여줬던 여행 프로그램은 일행이 함께 움직이고 생활한다. 반면 '알쓸신잡'은 각자 원하는 여행지를 간다. 출연진의 의사가 반영된건가.
A. 아무래도 그렇다. 이전에 했던 프로그램은 여행지보다는 연예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금 선생님들은 기본적으로 가고 싶은 여행지가 정해져 있고 보고 싶어 하는 곳이 있다. 최대한 의사를 존중하고 있다.
Q. 유희열의 역할을 만족스러운지.
A. 너무 만족스럽다. 지금까지 했던 프로그램이 전 연령을 대상으로 했다면 '알쓸신잡'은 사실 모두에게 친절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처음에 어머니가 방송 나가고 '너 괜찮냐'고 연락을 하셨다. 이렇게 어렵고 낯선 프로그램을 하게 돼 괜찮냐고 물으실 정도였다. '알쓸신잡'은 잘못하면 지식 경연장이 될 수도 있다. 유희열은 그 사이에서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친절하게 풀어갈 수 있도록 자신을 낮추고 물어본다.
Q. 유희열 본인도 '알쓸신잡' 출연을 만족스러워하나.
A. 언제까지 자기가 바보 역할을 해야 하냐고 묻더라. 하하. 분명한 건 유희열씨도 방송을 떠나 정말 재밌어한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더라.
명희숙 기자 aud6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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