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8월 어느 날. 서울 여의도동 KBS 신관 공개홀에선 KBS 2TV '개그콘서트'('개콘') 녹화가 한창이었다. 이날은 개그맨 김원효와 김준현이 새 코너 '비상대책위원회' 첫 녹화를 앞두고 관심을 모았다. 당시 '개콘'의 책임연출자였던 김진홍 PD(현재 KBS 예능국장)는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녹화를 보고 어떠한지 말해달라"는 부탁을 살짝 하곤 사라졌다.
당시만 해도 김원효는 '꽃미남수사대'에서 "쏘 섹시~"를 외치며 인기 개그맨으로 우뚝 선 상황이었고, 김준현은 이제 막 이름을 알린 기대주였다. 숨 쉴 새 없이 속사포 대사를 쏟아내며 "야, 안돼~"하던 김원효와 느닷없이 등장해 엉뚱한 소리를 내뱉는 김준현의 조합에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어때요?" 녹화가 끝나자마자 김 PD는 마치 숙제검사를 받는 학생처럼 답을 기다렸다. 대사가 너무 길고 빨라 못 알아들을 수 있다는 점과 에피소드가 금방 고갈될 위험이 높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김 PD는 곧장 기자를 데리고 김원효와 김준현이 있는 대기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두 사람에게 기자가 지적했던 사항을 전했다. 두 개그맨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그들에게 기자의 조언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주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만으로 장수하리라 직감했다. 이 시기 많은 코너들이 물갈이됐다. 그때마다 '개콘'의 PD나 개그맨들은 방송가 사람들이 '개콘'을 엿보는 걸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10%대에 머물던 시청률은 30%까지 바라보며 호시절을 누렸다. 소통이 비결이었다.
지난달 28일 KBS 신관 공개홀은 6년 전 그날처럼 분주했다. 한 자릿수 시청률과 말장난 수준 개그로 비판을 받아온 '개콘'이 대폭 변화를 꾀한 날이었다. 한동안 '개콘'을 떠나 있던 김대희 신봉선 안상태 박휘순 박성광 등이 투입돼 심폐소생에 나섰다. 6년 만에 '봉숭아학당'도 부활시켰다.
이날 제작진은 '철통보안' 속에 녹화를 했다. 제작진에게 현장 공개를 요구했으나 "촬영에 집중하고 싶다"는 말만 돌아왔다. '비장의 무기’를 준비 중인가 보다며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녹화해 2일 방영된 '개콘'은 참혹했다. ‘봉숭아학당’에 출연한 김대희 등은 말장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재미와 감동 그 어느 것 하나 끌어내지 못했다. BJ로 변신한 강유미는 간장(혹은 콜라) 한 병을 마셨을 뿐이고, 예지능력자 ‘신봉선녀’ 신봉선도 "너 바다 다녀왔지? 인스타봤다" 등 일차원적인 대사로 일관했다.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출연했을 그들이지만, 시청자의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날 시청률은 7.7%(닐슨코리아 집계)까지 하락했다.
소통의 부재가 문제다. 언론은 이미 여러 차례 '개콘'에 많은 조언을 했지만 제작진은 귀를 막고 있다. '개콘' 홈페이지게시판이나 인터넷 기사 댓글란에는 "폐지가 답"이라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 폐지는 남의 일이 아니다. ‘개콘’이 시청자들까지 외면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바깥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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