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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알코올 중독이 차라리 낫다

입력
2017.07.05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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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피츠제럴드ㆍ어니스트 헤밍웨이ㆍ테네시 윌리엄스ㆍ존 치버ㆍ존 베리먼ㆍ레이먼드 카버는 미국 문학사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거장들이면서, 혈중 알코올 농도를 한껏 높이고 나서야 행복해지거나 그런 뒤에야 질주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들이 질주를 한 곳은 아스팔트 위가 아니라 타자기 자판 위였기에 불특정 다수를 위험에 빠트리지 않았을 뿐, 부인ㆍ연인ㆍ가족ㆍ동료ㆍ출판 편집자들을 평생 동안 괴롭혔다. 피츠제럴드를 그의 소설 속 개츠비처럼 낭만적인 남자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는 며칠씩이나 술을 마시다가 술이 떨어지면 총을 들고 연인을 위협하는 난폭자였다.

영국의 에세이스트 올리비아 랭이 여섯 명의 술주정뱅이 미국 작가를 엄선한 <작가와 술>(현암사,2017)을 내놓기 훨씬 이전에, 정유석의 <작가와 알코올 중독>(랜덤하우스중앙,2005)이 먼저 있었다. 한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정신과 개업의가 된 지은이의 책에는 알코올에 중독된 스물세 명의 미국 작가들이 등장한다. 이건 전수조사가 아니다. 원한다면 누구나 속편을 쓸 수 있을 만큼 술에 쪄들었던 미국 작가의 재고는 충분하다. 정유석은 알코올로 재능과 수명을 허비했던 허먼 멜빌ㆍ오 헨리ㆍ레이먼드 챈들러ㆍ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ㆍ대쉴 해밋ㆍ하트 크레인ㆍ어스킨 콜드웰ㆍ존 오하라ㆍ제임스 존스ㆍ윌리엄 스타이런 같은 작가를 방면했다.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는 직업으로 술집 바텐더의 뒤를 이어 작가가 2위를 차지했다는 연구 조사도 있고, 일반인들의 알코올 중독자 발생률이 7%인데 비해 작가들은 30%나 되었다는 통계도 있다. 이쯤 되면 작가의 창조력과 알코올 사이의 친화력도 연구해 볼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일반인에게서는 30%인 알코올 중독이나 조울증 발병률이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면 80%로 치솟는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작가들의 발병 원인을 어디서 찾을지는 안 들어 봐도 뻔하다. 그런데 ‘가디언’ㆍ’뉴 스테이츠먼’ㆍ’뉴욕 타임스’ 같은 영국과 미국의 일류 신문에 기고를 한다는 올리비아 랭도 그들과 똑같은 하나마나한 소리를 한다. “이 여섯 작가 대부분은 고압적인 어머니와 나약한 아버지를 가졌거나, 스스로 그런 부모를 가졌다고 여겼다. 모두들 하나같이 자기혐오와 자기 부적절감에 시달렸다.” 세상에! 미래에 작가가 될 자식들의 부모들만 이혼을 했다는 말인가. 오히려 작가들은 자신의 과거나 상처를 객관화하거나 치유할 수 있는 언어라는 도구를 가졌기에 그런 기술을 익히지 못한 일반인보다 알코올 중독이나 조울증 발병률이 더 낮아야 정상이다. 우리는 저런 유사 설명을 한껏 비웃어야 한다. 작가들의 높은 알코올 중독율과 조울증 발병은 정신과 의사에게 맡겨서 치료하기보다, 시ㆍ도ㆍ군청의 사회복지부서 저소득 계층 담당 공무원에게 일임해야 한다. 이런 정직한 처방은 작가의 고통을 일반인과 달리 취급하면서 특권화하지 않는다.

<작가와 술> 본문과 권말에는 미국에서 1930년대에 출범한 금주동맹(AA)의 ‘AA 행동수칙 12단계’가 실려 있는데, 12개 단계 가운데 5개 항에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삶을 우리가 믿는 하느님에게 맡기기로 마음먹었다.”(제3단계) “우리는 하느님이 전적으로 이 모든 인성적 결함을 제거할 준비를 하셨음을 믿는다.”(제6단계) 등등. 지은이가 취재 중에 써넣은 것은 관여할 바 아니나, 이처럼 시대착오적인 행동수칙을 권말 부록으로 실은 편집자의 무신경은 놀랍다. 알코올 중독자 가운데는 참으로 여러 종류의 신앙인들이 섞여 있다. 알코올 중독만 사회악이 아니다. 우리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이렇게 취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다.

비화학물질(신)에 중독되는 것은 화학물질(술)에 중독되는 것보다 나쁘다. 화학물질은 고작 그 자신이나 주변의 몇 사람을 괴롭히지만, 비화학물질의 폐해는 손가락으로 이루 헤아리기 힘들다. 테러와의 전쟁을 한답시고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 집단 네오콘과 소멸을 앞둔 이슬람 국가가 그랬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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