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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포커스]웃길 자리 만든 ‘웃찾사’ 개그맨들

입력
2017.07.0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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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박지현(가운데)은 "SBS 개그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팟개스타'에 출연하는 이유를 밝혔다. 최지이 인턴기자
개그맨 박지현(가운데)은 "SBS 개그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팟개스타'에 출연하는 이유를 밝혔다. 최지이 인턴기자

“에너지 풀 곳 없어 답답했죠”

오랜만에 화통한 웃음소리 넘쳐

종영후 처음 모여… 울어버린 막내

“스탠딩 개그 한계” 새 장르 개척

“너는 다음 생에 대장내시경으로 태어나거라.” “안돼요! 염라대왕님. 똥 냄새나요.” “(이 콩트는) 엉망진창이네요.”

목소리만 담아내는 오디오 녹음인데도 연신 몸개그와 표정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현장의 관객은 PD와 작가들이 전부였지만, 최근 폐지된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 출신 개그맨들은 공연장에서 콩트를 펼치듯 활기찬 에너지를 발산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금천구 가산동 팟캐스트 방송 ‘팟개스타’의 녹음 현장. 코너별 녹음이 끝나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웃음꽃이 피던 분위기를 뚫고 누군가 씁쓸한 농담을 던졌다. “이제 우리에게도 직업이 생겼습니다. 하하.”

‘팟개스타’는 개그맨 정용국, 홍현희, 박지현 등 ‘웃찾사’ 출신 개그맨 12명이 모여 ‘오디오 개그’라는 새로운 형식의 개그를 선보이는 팟캐스트 방송이다. 5개 팀이 주제와 구성에 상관없이 매주 오디오 콘텐츠를 제작하고, 팟캐스트 포털 사이트 ‘팟빵’에 게재한 뒤 청취자 투표로 우승자를 가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한 소셜기부 플랫폼 쉐어 앤 케어에서 한 주간 모인 후원금이 상금으로 주어진다. 출연료는 한 팀당 30만원. 한 명당 10만원 내외의 수당을 받고 일주일 내내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다시 대중 앞에 서는 이들의 눈빛에는 생기가 돌았다. 이날은 ‘팟개스타’의 첫 단체 녹음이 있었다.

개그맨 홍현희는 '웃찾사' 식구들을 설득해 '팟개스타'를 꾸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팟개스타'로 새로운 장르가 개척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최지이 인턴기자
개그맨 홍현희는 '웃찾사' 식구들을 설득해 '팟개스타'를 꾸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팟개스타'로 새로운 장르가 개척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최지이 인턴기자

“잊히는 게 두려워”… ‘웃찾사’가 다시 모인 이유

이날 녹음에 참여한 개그맨들은 형식도, 내용도 구애 받지 않는 분위기에서 마음껏 개그를 펼쳤다. 홍현희와 장유환은 반전 요소를 가미해 연인 사이에 오가는 은밀한 대화를 재치 있게 꾸몄다. “우리 애기, 이리와.” “제집 개한테 하는 소리에요.” 지상파방송에선 선보이지 못했던 애드리브나 과격한 표현도 시원하게 오고 갔다.

우승자 발표 후 각자의 개그에 대해 평하는 단체 녹음에서도 각본 없는 수다는 계속됐다. 산만한 분위기를 홍현희가 정돈하자 누군가 “녹음은 언제 시작하냐”고 물었다. “녹음 시작한 지 꽤 됐다”는 PD의 대답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시작했어요? 이런 대화가 방송에 나가도 되나요?” “그럼요. 마음대로 얘기하세요.”

화통한 웃음소리로 분위기를 살리던 막내 박지현은 단체 녹음이 끝난 후 제작진과 한 인터뷰에서 ‘팟개스타’에 출연하는 소감을 묻는 말에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선배 개그맨들이 다독이는 손길에 감정이 북받치는 듯 더욱 눈물이 쏟아졌다. 박지현은 “‘웃찾사’가 종영되고 이렇게 모이는 게 처음이라 너무 반갑다”며 “우리 팀뿐만 아니라 ‘웃찾사’ 출신 개그맨들 모두 잘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한순간 밥줄이 끊겨 방황하던 개그맨들을 설득해 한데 모은 건 지난해부터 팟캐스트에서 ‘육성사이다’라는 방송을 하고 있는 홍현희였다. 그는 “SBS 개그맨들이 대중에 잊힐까 봐 걱정이 됐다”며 “무엇보다 개그는 협업해야 창작물이 나오는데, 새로운 개그 프로그램이 생길 때까지 감을 잃지 않고 대화의 시간을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개그맨 안시우는 “잠재된 에너지를 풀 공간이 없어서 답답했는데, 좋은 기회가 생겼다”며 “‘팟개스타’가 잘 되면 우리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되는 것이니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그림 3개그맨 이수한, 안시우, 이융성이 코너를 녹음하기 전 콩트의 내용에 대해 논의 하고 있다. 최지이 인턴기자
그림 3개그맨 이수한, 안시우, 이융성이 코너를 녹음하기 전 콩트의 내용에 대해 논의 하고 있다. 최지이 인턴기자

“스탠딩 코미디는 죽었다… 새 형식의 코미디 등장할 것”

‘웃찾사’가 폐지된 후 개그맨들의 근황을 묻자 “실의에 빠져 무기력하게 지내는 이는 거의 없다”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안시우는 “개그맨들이 장사, 공연, 영상 제작 등 평소 ‘웃찾사’만 바라보느라 하지 못했던 일들을 시도하고 있다”며 “단체 카톡방이 있는데, 선배들이 스케줄이 겹치거나 보수가 안 맞는 현장을 후배들에게 추천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웃찾사’에서 코너 ‘배우고 싶어요’를 진행한 안시우, 이융성, 이수한도 제법 바쁘다. 7일부터 대학로 웃찾사 전용관에서 그들이 직접 기획한 코미디 공연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 미국의 한인 매체 라디오 코리아와 연계해 미국에서 공연을 펼치고자 준비 중이다.

하지만 당장 생계가 어려워진 개그맨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SBS 공채 16기로 들어온 신인 개그맨 김지영은 “공채 개그맨이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는데 입사 1년 만에 프로그램이 없어졌다”며 “동기들은 생계유지를 걱정하지만, 다시 새로운 프로그램이 생길 것이라는 희망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웃찾사’ 복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2003년부터 ‘웃찾사’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정용국은 “우리끼리는 ‘짜인 개그, 스탠딩 코미디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요즘엔 채널 선택의 폭이 넓고 1인 제작 시스템으로 재미있는 온라인 콘텐츠가 넘쳐나기 때문에 참신한 형식이 아니고서는 시청자를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오민우는 “유튜브 영상도 5분이 넘어가면 잘 안 보는 세상”이라며 “한 자리에서 집중력 있게 스탠딩 코미디를 즐길 시청자가 더는 없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최근 SBS는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프로그램을 신설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정용국은 “유튜브 영상처럼 짧고 속도감 있는 드라마형 개그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며 “만일 하게 된다면, 작가가 아닌 개그맨이 직접 대본을 만드는 방식이라 1990년대 MBC ‘테마게임’과 다른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상품이 하나 폐기된 것이지, SBS 코미디가 망한 것이 아니다”라며 “먼저 ‘팟개스타’에서 작위적인 개그가 아닌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SBS 개그맨들의 역량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팟개스타’는 6일 티저 영상을 공개한 후, 8일부터 정식으로 방송을 시작한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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