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독립기념일(7월4일) 전날인 3일 저녁 8시40분쯤(미국 동부시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자칭한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연휴로 조용하던 백악관에는 순식간에 긴장이 감돌았다. 백악관과 국무부 한반도 라인은 충격에 휩싸인 채 북한의 대형 도발 의도를 파악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백악관은 미사일 발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련 사항을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참모들의 갑작스러운 보고를 받고 크게 분노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미사일 발사 후 불과 1시간 40분 정도가 지난 오후 10시19분쯤 ‘이 사람(김정은)은 할 일이 그렇게 없나’라고 김정은을 비난하는 한편 강력한 대응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렸다. 이어 4일 오전부터는 트럼프 정부의 국방ㆍ안보ㆍ외교관료들이 모여 북한의 ICBM 발사 주장을 진지하게 검토하며 추가 대응책을 논의했다고 CNN방송이 전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북한의 ICBM 발사 성공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의 대북 정책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5월 ‘최대한의 압박ㆍ관여’를 새로운 대북 정책으로 채택했는데, 이는 북한이 3~4년 후에나 미 본토 타격 기술을 확보할 것이라는 전제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ICBM 발사성공으로 북한 핵이 한국ㆍ일본을 벗어나 미 서부 캘리포니아까지 위협하게 된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책의 기본 전제가 허물어지게 된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바뀐 상황에 어떤 대응을 할지도 예측 불가능하게 됐다.

물론 당장은 군사옵션보다는 기존 정책의 연장선 위에서 대북 압박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ICBM 발사로 대북 압박의 명분도 강화된 만큼 ‘원유공급 중단’ 등 북한 경제를 마비시킬 수준의 강력한 압박을 중국에게 촉구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ICBM 도발 직후 올린 트위터 게시물에서 “한국과 일본이 이걸 더 견뎌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아마 중국이 북한을 크게 압박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단번에 확실히 끝낼 것”이라고 밝히며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 대응이 소극적이고, 북한 ICBM의 위협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판명이 난다면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북한이 미 본토 타격 능력을 갖출 것이라고 주장하자,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5월에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도발에 일일이 어떤 대응을 할지 밝히지는 않겠으나, 행동을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유사시 군사적 행동 등 강경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도 ‘미국 우선주의’ 관점에서 ‘파리 기후변화협약’과 환태평양자유무역협정(TPP) 탈퇴 결정까지 내렸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을 힘으로 제압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앞서 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은 대북 압박에서 독자적으로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며 중국의 대북공조가 부실하거나 유사시 홀로 움직일 수 있음을 경고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앨런 롬버그 석좌연구위원은 “미국과 그 동맹국을 공격했다가는 강력한 보복으로 궤멸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북한이 도발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상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김정은 정권이 ICBM으로 미 본토 공격 징후를 보인다면, 미국을 지킬 막중한 의무를 짊어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후 순간에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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