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류의 스포츠엔 별 관심이 없는 터라 프로레슬링에 '보디 슬램(body slam)이란 기술이 있는 줄 몰랐다. 찾아보니 '상대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매트에 내던지는 기술'이란다. 그런 기술이 있다는 것을, 또 언론을 상대로 그것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사람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가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28초짜리 동영상에서다. 여기서 짙은 색 양복을 입은 트럼프는 링 아래서 CNN 로고로 얼굴을 가린 상대를 보디 슬램으로 바닥에 메친 뒤 사정없이 주먹으로 두들기고 목을 조른다.
▦ 같은 장면이 세 번 반복될 즈음 'CNN은 가짜뉴스'라는 뜻의 해시태그 #FraudNewsCNN과 #FNN이 화면에 뜬다. 러시아게이트 등을 집중 보도한 CNN을 조롱한 이 영상은 백악관 공식 트위터 계정에도 올랐다. 이에 CNN 등 언론은 "대통령이 기자들에 대한 물리적 폭력을 조장했다"고 성토했지만, 백악관은 "대통령이 언론에 두들겨 맞았으니 대응할 권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보수진영이 이런 트럼프의 주류언론 적대감을 적극 부추기며 CNN과의 싸움에만 1,000만 달러의 후원금을 모아 줬다는 사실이다.
▦ 대선과정에서 줄곧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와 보도에 강한 불만을 토했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언론 적대감과 막말도 트럼프 못지않다. 그는 대표경선 과정에서 한국당 지지율이 7%로 나온 갤럽 여론조사가 언론에 발표되자 "탄핵과 대선 때 좌편향 조사로 열을 올리더니 이젠 아예 관제 여론조사로 먹고 살려고 작정한 모양"이라고 비난했다. 또 "대표가 되면 여의도연구소의 공정한 여론조사로 조작된 여론조사를 반드시 탄핵하겠다"고 말했다. 유리하면 공정이고 불리하면 조작이니, 전형적 ‘내로남불’식 언론관이다.
▦ 앞서 그는 대표출마 회견에서 느닷없이 홍석현 전 중앙일보ㆍJTBC 회장을 겨냥 "탄핵 이후 신문과 방송 갖다 바치고 조카 구속시키고 청와대 특보 자리를 겨우 얻은 언론도 있다"고 말해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됐다. 이에 그는 "(송사엔 송사로 대응해) 부도덕하고 잘못된 재벌언론 행태에 대해 국민운동을 전개해 재벌언론의 갑질시대가 끝났음을 자각하도록 하겠다"며 항전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당선회견에서 그는 "권력은 5년도 못 가지만 언론은 영원하다"는 말로 질문을 비켜갔다. 뒤늦게 깨우친 것일까, 칼을 숨긴 것일까.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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