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때 보고 듣고 읽고 맛볼 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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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 보고 듣고 읽고 맛볼 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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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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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의 계절이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할까. 산으로 바다로 해외로 고향 집으로… 갈 곳은 많고 할 일은 허다하다. 직장인 대부분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가량. 여행을 다녀와도 자투리 시간은 남음직한 기간이다. 오래도록 벼려왔던 문화와 함께 마주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럼 무엇을 보고 듣고 읽고 맛볼까. 한국일보 문화부원들이 휴가철을 맞아 각자 꼭 하고 싶은 문화활동을 소개한다.

고종이 사랑한 집옥재와 필우정(강은영 기자)

대한제국 시절 고종의 서재로 쓰였던 경복궁 내 집옥재는 작은 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하루쯤 복잡한 마음을 고요하게 달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집옥재와 팔우정은 조선 고종이 사랑한 곳으로 가비(현재의 커피)를 즐기며 책과 함께한 곳이다. 지난해 문화재청에서 ‘궁궐 속 작은 도서관’으로 개관해 일반인들도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외관부터 고즈넉하다. 경복궁의 끝자락인 북문 신무문 앞에 자리한 이곳을 고종이 왜 그토록 자주 드나들었는지 알 수 있다. 따듯한 햇살이 온전히 나무를 비치고 살랑이는 바람이 머문다.

고종의 서재였던 집옥재는 책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도서관이 되었고, 고종이 커피를 마셨던 팔우정은 북카페로 장소를 내줬다. 밖이 환히 내다보이는 팔우정에 앉아 있으면 가슴이 탁 트이면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비가 오는 날을 특히 ‘강추’한다. 기와에 맺혀 뚝뚝 떨어지는 빗소리는 잡념을 단번에 없애준다. 직원이 내려주는 커피 ‘가배차’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조선의 궁궐 안에서 즐기는 빗소리와 커피, 그리고 책의 조화는 말이 필요 없는 치유법이다. 도시의 소음과 업무 스트레스, 인간관계 속 피로를 풀길 원한다면 혼자 가서 즐겨보시길.

경복궁 입장료 3,000원을 내고 들어와야 하며, 10월까지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 운영된다. 집옥재에서는 역사문화강좌도 열린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숨겨진 꿀잼 드라마 ‘순정에 반하다’(김표향 기자)

드라마 '순정에 반하다'.

어쩌다가 이 드라마를 보게 됐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불금과 불토를 고스란히 갖다 바치고도 틈틈이 복습까지 하면서 다음 방송을 기다리던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나 말고는 주변에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럴 법했다. 줄거리가 진부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M&A 전문가가 심장을 이식 받은 뒤 자기도 모르게 심장 주인을 닮아가고 급기야 그의 남겨진 연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흔해빠진 이야기. 그러나 개연성이 탄탄하고 치밀했다. 남녀 주인공의 흔들리는 감정을 ‘셀룰러 메모리’로 퉁 치지 않았다.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아주 섬세하게 보듬었다.

망작만 골라서 좋아하기로 유명한 ‘막눈’임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재미는 검증을 거쳤다. 내 강압에 못 이겨 이 드라마를 봤던 동료 기자와 매니지먼트사 홍보팀장이 며칠 뒤 한껏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꿀잼이야, 꿀잼!” VOD 다시보기에 만족할 수 없었던 나는 관계자를 통해 대본까지 구해다 봤다. 기사도 이 대본처럼 재미있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하면서.

주연배우 정경호에 빠져 한동안 덕질을 했다. 소녀시대 수영이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다크시티-필름 누아르 특별전’(라제기 기자)

'다크시티-필름 누아르 특별전' 포스터.

누아르라는 단어는 한국인에게 친숙하다. 조폭영화도 누아르로 불리고, 스릴러 영화도 누아르로 호명된다. 정작 누아르가 뭐냐고 물으면 말문이 막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어두운 뒷골목을 배경으로 사나이들의 비정과 의리를 그린 영화라고 정의 내리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딱히 정답은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신경 쓰지는 마시길. 서양에는 별 의미 없이 누아르라 이름 붙인 립스틱도 있으니까. 요컨대 누아르는 비장미를 강조하거나 겉멋을 드러내는 어떤 수식이 됐다.

누아르의 발원지는 필름 누아르다. 1940~50년대 일련의 미국영화들을 대상으로 프랑스 영화평론가들이 범주화하며 만들어낸 용어다.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내가 인적 드문 도시의 거리를 걷는 모습, 남자주인공을 파멸로 이끄는 여자주인공, 뚜렷한 대조가 돋보이는 흑백화면, 음모와 배신이 뒤엉킨 도시의 비정 등이 필름 누아르의 특징이다.

6~23일 서울 종로구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다크시티-필름 누아르 특별전’은 누아르의 원형질을 목도할 수 있는 자리다. 필름 누아르의 원조로 종종 꼽히는 ‘이중배상’(1944)과 ‘우회’(1945), ‘밀드레드 피어스’(1945) 등 13편이 스크린에 명멸한다. 큰 화면에서 뿜어나는 냉기와 고전의 품격만으로도 더위가 지워진다.

크루앙빈의 노래 ‘화이트 글로브즈’(양승준 기자)

밴드 크루앙빈. 크루앙빈 사회관계망서비스

태국어로 비행기란 뜻의, 해독이 필요한 낯선 이름을 지닌 미국 밴드(KhruangBin)의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지난달 25일 JTBC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였다. 하늘에 펼쳐진 노을을 바라보며 한적한 제주의 도로에서 차를 몰던 기타리스트 이상순은 “지금 이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래를 틀어줘”라고 아내이자 가수인 이효리에 부탁한다. 잠깐 고민하던 이효리는 휴대폰으로 이 곡을 재생한 뒤 창문을 열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낭만에 빠진다. 곡의 분위기가 소박한 휴식과 무척이나 잘 어울려 곡 제목을 방송 내내 머리가 아닌 가슴 속에 담아뒀던 노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명징한 기타 소리로 시작하는 곡엔 여유가 넘친다. 한 줄 한 줄 사려 깊게 짚어가며 낸 차분한 기타 연주에 베이스와 드럼이 조바심 내지 않고 툭툭 화음을 쌓아 여운을 더한다. 마구간에서 곡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괴짜 밴드가 2013년 낸 곡은 짧지만, 울림은 깊다. 컴퓨터로 직조된 소리가 아닌, 저마다의 숨결이 살아 있는 밴드 합주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곡 구성이 단조롭고 여백이 많아 해변에서 일광욕 하거나 산에서 이어폰을 꽂고 책을 읽을 때 듣기 좋다. 스페셜 땡스 투 이효리ㆍ이상순.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양진하 기자)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KBS 제공

볼 때 마다 새롭다. 벌써 10번이 넘게 ‘정주행’ 했는데도 그렇다. 결말까지 훤히 알고 있어도 시간이 날 때면 다시 보게 되는 이 드라마, 2008년 KBS2에서 방영했던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방송사 드라마 제작국의 모습을 그렸다. 밤낮없이 일하는 PD들과 작가, 배우들이 주인공이지만, 그곳에 사는 ‘그들’이 일하고 사랑하며 울고 웃는 모습은 그 바깥의 우리들과 똑같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마음 깊숙이 와 닿는 대사 한 문장 한 문장에 있다. 명불허전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다. “드라마와 인생은 확실히 차이점이 있다. 드라마의 갈등은 늘 준비된 화해의 결말이 있는 법이니까, 갈등만 만들 수 있다면 싸워도 두려울 게 없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준비된 화해의 결말은커녕 새로운 갈등만이 난무할 뿐이다”와 같은 내레이션은 곱씹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난 뒤 노 작가의 글을 다시 되짚어 보고 싶다면 ‘그들이 사는 세상 대본집’을 봐도 좋다. 드라마의 명대사와 함께 현실에서 겪은 작가의 삶을 진솔하게 써낸 산문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도 추천한다. 그래도 휴가 기간이 아직 남아 있다면 가장 마음에 드는 글귀를 가장 좋아하는 펜으로 꾹꾹 눌러 쓸 테다.

노희경 작가 산문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미국 드라마 ‘모던 패밀리’(이소라 기자)

미국 드라마 ‘모던 패밀리’의 한 장면. 미국ABC 제공

생각을 비우고 싶을 때는 역시 시트콤이 제격이다. 미국 ABC방송의 드라마 ‘모던 패밀리’에는 여행의 행복을 극대화 해줄 기분 좋은 이야기들이 가득 녹아있다.

2009년 첫 방영해 시즌9까지 이어오고 있는 장수 드라마다. 현대 가족 간에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을 한 회당 20여 분에 걸쳐 속도감 있게 풀어낸다. 극중 프리쳇 가족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재혼 부부, 베트남 아이를 입양한 성소수자 부부 등 저마다 새로운 가족 형태를 이루고 있다. 몸개그, 말장난과 같은 휘발성 강한 개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문화, 성소수자, 입양, 세대 차이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며 공감을 끌어낸다.

한 회에 에피소드가 완결되는 구조로 전 시즌을 보지 않아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부담이 없다. 이야기 줄기도 비교적 단순해 깊은 집중력 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실컷 웃다 보면 극중 인물의 독백이 예상치 못한 감동을 안기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서 왔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어울린다.” “사랑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리를 하나로 묶게 한다.” 방송 말미 이어지는 내레이션은 이 드라마의 숨겨진 묘미다.

소설 ‘순수 박물관’(이윤주 기자)

터키 이스탄불에 세운 '순수박물관'에서 오르한 파묵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의상, 장신구, 밀랍 모형, 지도 등으로 소설 각 장을 재현했다. 민음사 제공

올 휴가 기간 홀로 ‘북케이션(bookcation)’(책과 함께 하는 휴가)하려는 독자께 이 책을 추천한다. 연인과 휴가를 떠나는 독자께도 이 책을 권한다. 올해 휴가지를 이스탄불로 정한 독자는 반드시 이 책을 ‘트렁크에 넣어가라’ 충고한다. 빌리지 말고 구입해서.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이 쓴 연애소설이다.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곁에서 바라본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사랑과 집착을 그린다. 그녀와의 사랑이 이루어지려던 찰나, 사고로 연인을 잃은 남자는 유품을 모아 ‘순수 박물관’을 짓는다. ‘30년 연애사’에 터키의 근현대 문화가 씨줄날줄처럼 펼쳐진다.

작가 오르한 파묵이 이스탄불에 만든 순수 박물관. 책을 가져가면 입장료가 공짜다. 민음사 제공

파묵은 소설 속 장면을 재현한 진짜 ‘순수 박물관’을 이스탄불에 지어 2010년 개관했다. 여주인공 퓌순이 피고 남긴 담배꽁초부터 데이트할 때 입었던 옷과 귀걸이, 함께 마시던 ‘멜팅 소다’까지. 어릴 적 갖고 놀던 인형의 집을 실사판처럼 재현해놓은 박물관은 우리의 명동에 해당하는 이스탄불 탁심 광장의 구석, 다시 말해 이 책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곳에 있다.

전 세계 번역된 ‘순수 박물관’ 소설책을 들고 가면 공짜다. 두 권으로 나눠 출간된 한국어판은 2권에 ‘도장’받는 란이 있다.

순수 박물관에 책을 가져가면 여주인공 퓌순의 귀고리 모양을 닮은 도장을 찍어준다. 이미현씨 제공

‘호빗’ㆍ’반지의 제왕’ 시리즈(조태성 기자)

'반지의 제왕' 주인공인 네 명의 호빗. 귀족, 무사, 장사꾼이 아닌 순박한 농민이 인류를 구한다.

얼마 전 스타워즈 1~6편을 일곱 살 아들과 ‘정주행’했다. 사내 녀석 아니라고 할까봐 칼싸움 장면 빼면 다 시큰둥한 듯 했다. 그래도 “내가 니 애비다”란 대사가 나오자 “대박~” 이라 외친 걸 보니 투덜대면서도 어깨 너머로 슬쩍 본 모양이다. 하여 이번 휴가 때는 ‘반지의 제왕’ 3부작과 ‘호빗’ 3부작 ‘정주행’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이유는 ‘호빗’ 1부 ‘뜻 밖의 여정’에 나온다. 왜 하필이면 아둔한 꼬마 농부 족속인 호빗에게 이 세계의 미래를 거느냐는 질문에 마법사 간달프는 이렇게 말한다. “사루만은 위대한 힘이 악을 저지한다고 믿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작은 행동들, 가령 친절이나 선행 같은 것들이 어둠을 물리친다고 믿어요.”

백색의 마법사 사루만. 지혜와 힘을 갈망하는 그는, 결국 악의 편에 선다.

힘을 숭상한 사루만은 결국 변심하지만, 그저 집에 돌아갈 생각뿐이었던 호빗은 기적을 이뤄낸다. 발터 벤야민은 유대신비주의의 목소리를 빌어 이렇게 말했다. “천국이란 우리 모두가 이 세상 돌멩이 위치를 조금씩 바꿔놓은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간달프의 저 대사는 6편의 거대 시리즈물을 관통하면서 모든 스토리를 버티게 해주는 등뼈다. 장르가 판타지라는 게 좀 걸리긴 한데 그래도 일곱 살은, 꿈을 좀 꾸어도 좋지 않을까. 마흔 넘은 애비까지도. 덤으로.

가지 다섯 개(황수현 기자)

가지 요리의 핵심은 기름기다. 사진처럼 바싹 마른 것 같은 가지 요리 대신 ‘기름 줄줄’ 가지 요리를 해먹을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하루에 한 개씩, 다섯 개의 가지를 먹을 것이다. 다섯 개인 이유는 요즘 가지가 다섯 개에 천 원이기 때문이다. 200원에 한 개만 달라고 할 순 없으니 늘 1,000원어치를 산다. 주말에 한 개, 잘해야 두 개 먹고 그 다음 주말, 축 처진 가지들을 보는 심정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한 웹툰에서 보고 저장해둔 전자레인지 가지 요리를 해먹을 것이다. 씻은 가지를 전자레인지에 통째로 던져 3분간 돌리는 박력 있는 요리법이다. 그 동안 양념장을 만든다. 팬에 올리브유를 잔뜩 넣고 마늘 다섯 알을 다져서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볶는다. 향이 올라오면 간장 두세 숟갈, 굴소스 한 숟갈, 소금을 약간 넣어 뒤적뒤적해준다. 다진 고기나, 소시지를 넣어도 좋다.

전자레인지에서 가지를 꺼내 크고 넓은 접시에 놓은 뒤 배를 가른다. 김이 오르는 가지 속살에 칼집을 착착 내고 그 위에 양념장을 고루 붓는다. 여기에 참기름 약간, 그리고 쪽파나 홍고추를 다져서 뿌리면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처럼 보기도 근사해진다. 끝으로 다시 전자레인지에 넣어 3분 돌리면 완성. 곁들이 음료는 맥주도 좋고 커피도 좋다.

마지막 가지를 먹는 날, 간신히 얻어낸 만족감이 어느덧 초조함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마늘이랑 쪽파는 언제 다 먹을까.

강백수의 ‘감자탕’(최문선 기자)

'감자탕'이 수록된 강백수 1집 '서툰 말'.

여름은 이별의 계절이 아니다. 헤어지자고 말하기엔 만사 귀찮으니까, 휴가 동행이 필요하기도 하니까. 감자탕은 여름 음식이 아니다. 삼계탕, 보신탕, 해신탕… 보양식 목록에 감자탕은 없다.

비치보이스, 쿨 같은 여름 가수가 지겨울 때, 전자 비트 음악에도 흥이 나지 않을 때, 감자탕이 등장하는 이별 노래를 들어 보자. 강백수의 ‘감자탕’. “이제는 나 알 것 같은데 네가 얼마나 날 아껴 줬는지. 젓가락질이 서툰 나에게 감자탕 고기를 발라 주던 너.” 늦은 밤 혼자 먹는 감자탕은 그를 소환한다. 어려서, 어리석어서 소중한 줄 모르고 떠나 보낸 그. “예쁜 손톱 밑에 들깨가루가 끼는데도 내게 감자탕을 발라 주던 네가 있었다. 빨갛게 손가락이 달아오른 줄도 모르고 나의 입천장이 델 까봐 걱정하던 바보.” 온통 끈적거리는 가사가 여름에 어울리는 건 수영장 파란 물색 같은 강백수의 목소리 덕분이다.

해 뜨는 해변을 걸으면서, 리조트 선베드에 누워서 옛 연인을 잠시 떠올리는 건 큰 죄는 아니다. 현실로 돌아오면 사랑하는 이에게 삼계탕 닭다리를 발라 주자. 수박 가운데 토막을 양보하자. “그런 너를 떠나 보낸 내가 바보 같구나. 이제야 너를 그리워한다.” 그런 후회 따위 남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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