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7월 4일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양키스팀 1루수 루 게릭(Henry Louis Gehrig, 1903~1941)의 은퇴식이 열렸다. 그날 게릭은 연설에서 자신이 앓던 병을 언급한 뒤 “하지만 오늘, 저는 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멋진 선수 및 감독들과 함께 했던 17년 간의 행운, 팬들의 친절과 격려, 그리고 “항상 힘의 근원이 되어주며, 내가 가능하다고 여기던 것보다 더 멋진 것이 있다며 용기를 북돋워준 아내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이 된 수많은 스타들이, 관중석의 팬들과 뉴욕 시장이, 새로운 전설이 된 게릭에게 박수를 보냈다.
1923년 뉴욕 양키스에 입단해 만 14년(25~39년)을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그는 2,130경기 연속출장 기록과 12년 연속 3할대 타율, 5차례의 40홈런 이상을 기록한 교타자이자 강타자였다. 1995년까지 최고기록으로 남았던 저 연속출장 기록이 말해주듯, 그는 최고의 선수였지만 성실하고 헌신적이었고, 또 대체로 겸손했다. 그가 앓던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 증상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 건 38년 시즌 중반부터였다. 타력도 주루 플레이도 표나게 약하고 둔해졌다. 하지만 감독(조 매카시)도 팀의 누구도, 구단주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출장 명단에서 먼저 그를 배제하지 않았다. 프로들의 프로인 그들이 승리보다 자신을 믿고 아꼈다는 사실을 게릭은 자랑스러워했고, 고마워했다. 그리고 39년 4월 30일, 게릭은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고, 다음 경기 직전이던 5월 2일 감독에게 빼달라고 청했다.
남은 생이 길어야 3년이라는 진단을 받은 그는, 은퇴 직후 임기 10년의 뉴욕시가석방위원회 감독관이 됐다. 쉬며 요양하는 대신, 고액의 강연 요청 등 돈벌이 대신, 그는 사실상 지역 봉사에 임했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끝까지 힘과 용기를 북돋워준 게 25년 결혼한 아내 엘리너(1905~84)였다. 부부에겐 자녀가 없었고, 엘리너는 평생 재혼하지 않았다. 2차 대전 중 전쟁채권을 팔았고, 루의 유품 경매로 번 돈 600만 달러로 이웃을 돕고 ALS연구 기금에 보탰다. 그는 게릭이 야구로 벌어 남긴 유산 거의 전부를 그렇게 사회를 위해 쓴 뒤 세상을 떠났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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