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열’의 다른 제목은 ‘가네코 후미코’다.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아나키스트 박열(이제훈)의 불꽃 같은 삶은 그의 연인이자 사상적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가 함께해 더 뜨거웠다. 열혈 페미니스트였고 천황제를 부정한 아나키스트였으며 식민지 조선의 해방을 꿈꾼 일본인 가네코는 배우 최희서(30)의 섬세한 숨결로 빚어졌다.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이 가네코를 알게 됐고, 동시에 최희서를 눈에 새겼다. 빛나는 발견이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최희서는 “마지막 촬영 날 ‘앞으로 사람들이 가네코를 너의 얼굴로 기억할 것’이라는 이준익 감독님 말씀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며 추억 하나를 꺼냈다. 금세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가네코는 박열(이제훈)에 먼저 동거를 제안할 만큼 당차고 진취적인 인물이었다. 조선인학살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일본 내각의 음모로 박열과 함께 검거된 후엔, 법정을 자신의 신념을 펼치고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무대로 삼는다. “가네코는 열정적이면서 순진무구해요. 표현에 거침이 없죠. 조선인을 조롱하는 일본인에게 뜨거운 어묵국물을 뿌릴 땐 야성적이기도 해요. 제가 가진 강렬한 에너지를 확장시키는 훈련을 많이 했어요.”
신념으로 결합한 박열과 가네코의 애틋한 관계는 ‘박열’을 멜로드라마로도 보이게 한다. 그 흔한 포옹 장면 한번 없이도 말이다. “두 사람이 눈빛을 마주치는 장면들에 눈을 찡긋거리는 표정을 담았어요. 이제훈 선배와 만든 둘만의 언어였죠.”
최희서는 대사를 일본어로 번역하고 수정하는 작업도 도왔다. 당시 재판기록까지 참고했다. 가네코의 한국어 대사는 히라가나로 옮겨서 발음했다. 아버지 직업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 5년간 일본 오사카에서 살았던 경험이 값지게 쓰였다. 그는 “대사 번역은 인물 연구의 연장선이기도 해 내겐 일석이조였다”고 빙긋 웃음 지었다.
이 감독의 전작 ‘동주’에서는 시인 윤동주의 시를 사랑한 일본인 쿠미를 연기했다. ‘동주’의 시나리오를 쓴 신연식 감독이 지하철에서 연극 대본을 펼쳐놓고 대사를 중얼거리고 있던 최희서를 우연히 보고 뒤쫓아가 명함을 건넸고, 얼마 지나 ‘동주’를 준비 중이던 이 감독에게 소개했다. 그 인연이 ‘박열’까지 이어졌다.
두 작품으로 최희서의 이름을 알렸지만 데뷔작은 2009년 영화 ‘킹콩을 들다’다. 이후로 영화 ‘577프로젝트’ ‘완전 소중한 사랑’ ‘사랑이 이긴다’, 드라마 ‘오늘만 같아라’ ‘달려라 장미’ 등에서 작은 역할을 맡았다. 무명 시절이 길었지만 조급해하진 않았다. 초등학교 때 연극 ‘심청전’ 무대에 올랐던 이후 한번도 포기한 적 없는 꿈이기 때문이다.
연세대에 입학하던 날 연극 동아리로 달려갔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것도 당시 선택 가능한 전공 중에 연기와 가장 가까워 보여서였다. 영상 수업에서 조모임을 같이 했던 친구들과 졸업 후에도 단편영화를 계속 찍었다. ‘서울라이트필름’이라는 창작집단도 꾸렸다. “연기할 기회를 못 잡고 있으니 뭐라도 해야 했어요. 연기를 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를 만든 거죠. 그러다 중간중간 연극도 했고요. 3개월 넘게 연기를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요즘 그에게 따라붙는 ‘신인배우’라는 수식엔 살짝 서운해했다. “그동안 조연으로 출연했던 작품들은 가치가 없는 걸까, 그래서 내 커리어가 될 수 없는 걸까 싶어서요.” 같은 의미에서 앞으로 주어질 작품과 배역들을 크게 욕심내지 않는다고도 했다. ‘박열’과 가네코를 만났기 때문이다. “가네코는 여성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아름답게 투쟁했던 사람이에요. 살아가는 동안 가네코 같은 캐릭터를 또 연기할 기회는 없을 거예요. 다른 작품과 캐릭터를 만난다 해도 ‘박열’이 저의 대표작이란 사실은 변함 없어요. 그걸로도 저는 충분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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