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ㆍ북핵보다 한미FTA 몰아붙인 트럼프
보수진영 문재인 흠집내기로 전략적 혼선
미국에 당당히 우리 국익 말할 수 있어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타가 인정하는 ‘거래의 달인’이다. 두둑한 배짱과 치밀한 계산으로 막대한 부를 일궜다. 그는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내가 거래를 성사시키는 방식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목표를 높게 잡은 뒤 전진에 전진을 거듭할 뿐이다”고 소개했다. 책을 쓴 지 30년이 지나 대통령이 된 지금도 그의 인식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국가 간의 외교는 ‘미국의 국익’을 얻기 위한 큰 판의 거래일 뿐이다.
한미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도 트럼프 식 거래 수법이 그대로 적용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 후 ‘대북 선제공격론’을 끊임없이 흘렸다.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자 느닷없이 ‘사드 비용 10억달러’와 ‘한미FTA 재협상’을 들고 나왔다. 그가 거래 성사의 최우선 기법으로 제시한 “크게 생각하라” “지렛대를 사용하라”는 원칙에 따른 포석이었다.
트럼프의 판 키우기 전략은 적중했다. 대북 군사공격이라는 유령이 한반도 상공을 어슬렁거렸고, 전면전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퍼졌다. 보수진영은 사드 배치 문제 제기를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손상으로 몰아붙였다. 이런 기류는 문재인 정부의 약한 고리인 대미관ㆍ안보관을 파고들었다. 그들은 “트럼프를 당장이라도 만나 오해를 풀어 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역대 정부에서 가장 빨리 한미정상회담이 이뤄지게 된 배경이다.
등 떠밀리다시피 하는 바람에 외교ㆍ안보 진용은 채 갖추지도 못한 상태였다. 주무장관인 외교부 장관은 국회 청문회에 묶여 청와대 안보실장이 미국에 가 정상회담 일정을 협의했다. 정상회담의 의제와 대응 전략 수립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주요 관심사가 사드와 북핵보다는 무역 불균형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도 정상회담 이틀 전 백악관의 발표를 통해서 알려졌다. 한미 확대정상회담에서 한미FTA 재협상이 주의제로 다뤄졌는 데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새로 만들기로 한 통상교섭본부장은 자리에 없었다.
정작 트럼프가 격노했다는 사드 배치 지연은 정상회담에서는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앞서 미 의회 지도부 면담에서 “환경영향평가 실시로 사드 배치가 늦어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조기 배치를 약속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법 논란도 그렇다. 보수진영에서는 우리 정부의 ‘단계적 접근’과 미국의 ‘포괄적 접근’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며 갈등을 부추겼다. 하지만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는 ‘단계적ㆍ포괄적 접근으로 북핵을 해결’이라는 문구로 간단히 정리해버렸다. 트럼프의 ‘압박과 관여’나 문 대통령의 ‘대화와 제재’는 엄밀히 말해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논란을 키움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혼선을 초래한 꼴이 됐다.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미국의 전략을 파악해 대비했다면 트럼프의 무리한 ‘FTA 압박 쇼’를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알아야 할 것은 한미동맹의 본질이다. 보수진영에서는 한미동맹을 미국이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시혜적 동맹’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집요한 요구에서 보듯 한미동맹은 ‘상호 호혜적 동맹’이다. 이런 사실이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전의 한미관계에서도 우리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억지라는 이득을 얻는 대신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며 동아시아 지역에서 전략적 이익을 취하는 균형을 유지해 왔다. 그러던 것이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점이 더해졌을 뿐이다. 트럼프도 결국 정치인으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이 있고, 우리는 우리의 관점과 이익이 있다.
한미동맹은 우리의 생존과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얻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을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기면 우리는 늘 끌려 다니고 많은 것을 내줄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려면 외교안보 분야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과거의 구태와 결별해야 한다. 외교의 힘은 언제나 국내의 지지에서 나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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