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 출입 선박 안내 전문가
응시생 중 백발의 신사 많아
“법규는 사시, 영어는 외시 수준”
높은 경쟁률에 재수·삼수 기본
직업 만족도 판사 이어 2위
경기 따라 수요·수입 달라져
“도선사 시험이요? 법규는 사법고시, 운용술은 기술고시, 영어는 외무고시 수준입니다.”
올해 딱 1명 뽑는 평택ㆍ당진항 도선사에 도전한 중년의 수험생 김태완(46) 선장은 지난달 22일 도선사 시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선사는 대형 선박에 탑승해 해당 선박이 안전하게 부두에 닿을 수 있도록 수로를 안내하는 전문가다. 해기사(항해사, 기관사 등 선박 업무를 수행하는 기술자)의 ‘꽃’으로 불리는 도선사 선발 과정을 엿보기 위해 찾은 부산 영도구 동삼동 한국해양수산연수원의 2017 도선수습생 선발 필기시험장엔 전운이 감돌았다. 이날 모인 154명 중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이는 단 20명. 가만히 눈을 감고 기도하는 사람, 형광펜과 빨간펜으로 장식된 두툼한 노트를 읽는 수험생 등은 여느 고사장 풍경과 다를 게 없었다. 특이한 건 수험생들의 나이다. 6,000톤 이상 선박의 선장으로 5년 이상 승선한 경력이 있어야만 도선수습생 선발 시험에 응시할 수 있어 수험생 중에는 초로의 백발 신사가 많았다. 20대 초반부터 항해사로 꼬박 20년 배를 타야 겨우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 셈이다. 현역 도선사 250명 중 60.8%가 60세 이상인 것도 이 때문이다. 높은 경쟁률 때문에 재수, 삼수는 기본이다.
오대양 육대주를 돌던 선장들이 한 항구에서만 일할 수 있는 도선사에 도전하는 이유는 뭘까? 가족과 고국, 육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외항선 선장들은 배에서 내려 쉬는 휴가 기간을 제외하면 1년에 10개월 가량을 바다 위에서 보낸다. 34년간 배를 탔다는 수험생 신종철(60) 선장은 “아들이 이젠 같이 살고 싶다며 도선사를 추천했다”며 “지난 3월 하선한 뒤 부산에 원룸을 얻어 하루 10시간씩 주말도 없이 공부했다”고 말했다.
높은 연봉과 사회적 위상도 도선사를 꿈꾸게 만든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6 직업만족도 분석’에 따르면 도선사는 판사에 이어 두 번째로 만족도가 높다. 부산이나 포항처럼 선박 입출항이 잦은 곳의 도선사 연간 수입은 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박과 항만의 안전을 책임지는 최고 명예직이기도 하다. 10년 만에 도선사 시험에 재도전한다는 노삼식(60) 선장은 “도선사는 경험이 쌓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으로, 마도로스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강조했다.
화려하지만 그늘도 있다. 좌초와 선박간 충돌 등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항만에서 대형 선박들을 안전한 항로로 유도해야 하는 게 도선사의 책임이다. 도선사가 실수하면 막대한 피해로 이어진다. 2014년 1월 전남 여수산단 원유부두로 들어오던 싱가포르 대형 유조선 우이산호가 도선사 과실로 해상 송유관과 충돌해 164㎘의 기름이 유출됐다. 해당 도선사는 징역 2년의 실형을 받았다.
항만 수출입 물동량과 직접 연관되다 보니 경기 상황에 따라 수요와 수입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갈등으로 인한 중국 크루즈 관광객 감소 등도 도선업계에는 직격탄이 됐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도선료 11억원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직 도선사들은 ‘국가 경제 최일선에 있다’는 자긍심이 크다. 진노석 전 인천항도선협회장은 “국내에 필요한 물자와 연료 수송은 대부분 선박 운송을 통해 이뤄지고 이를 안전하게 책임지는 게 바로 도선사들”이라고 강조했다. 부산=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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