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분자진단기술로 가격 75% 낮춰
탄자니아 감염 실태조사 사용 중
유엔인구기금, 유니세프도 문의
#2
연 매출 40% 연구개발에 투자
올해 첫 흑자전환 기대
2019년 RNA기술 임상시험 계획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는 브라질 리우올림픽 기간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은 지카바이러스와 그 친척뻘인 뎅기열, 치쿤구니아 바이러스의 감염 여부를 한꺼번에 진단할 수 있는 키트에 대해 처음으로 긴급사용 승인했다.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하는 상황일 때 각국에 배포하는 제품 명단에 올렸다는 의미다. 이 키트를 개발한 기업이 바로 국내 바이오벤처 1호 바이오니아다. 함께 긴급사용 승인 명단에 오른 독일 알토나진단의 제품은 지카바이러스 감염만 가려낼 수 있다.
바이오니아가 세계 최초로 WHO 긴급승인을 받은 지카바이러스 다중진단키트는 현재 탄자니아의 감염 실태조사에 쓰이고 있다. 유엔인구기금(UNPF)과 유니세프 등 국제기구들의 제품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박한오 바이오니아 대표는 “자체 개발한 B형과 C형 간염, 후천성 면역결핍증(에이즈) 진단 키트도 올해 아시아 기업 최초로 유럽에서 사용 승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우리의 분자진단 기술은 유명 다국적기업들과 동등한 수준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환자의 증상이나 의사의 경험을 토대로 병을 판단하던 기존 진단 방식과 달리 분자진단은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을 분석해 발병 여부를 알아내는 기술이다. 진단의 신뢰도와 정확도가 높을 뿐 아니라 빠른 시간 안에 대규모 진단이 가능해 특히 사람 간에 확산하는 지카바이러스나 에이즈, 간염, 결핵 같은 감염병 예방과 치료에 필수로 자리 잡고 있다.
국제사회가 바이오니아의 분자진단 기술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의료의 공공성을 충족하기 때문이다. 바이오니아 분자진단 키트 가격은 애보트나 로슈, 지멘스 같은 다국적기업 제품의 4분의 1 정도다. 소수 대기업이 고집하던 비싼 가격을 감당할 수 없어 아프리카 등의 개발도상국에는 분자진단의 혜택이 충분히 돌아가지 못했다. 박 대표는 “핵심 기술을 직접 개발해 특허를 받았기 때문에 비싼 로열티 지불 없이 제품을 자체 조달할 수 있어 가격경쟁력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만한 기술력을 갖출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단연 연구개발 투자다. 바이오니아는 2000년 이후 해마다 매출액의 약 40%를 연구개발에 쏟아부었다. 지난해 바이오니아의 매출액은 약 210억원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1호 기술창업 기업으로 1992년 첫 발을 뗀 뒤 유전자(DNA) 합성 기술과 관련 효소를 판매하면서 흑자 행진을 이어가던 바이오니아는 공격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시작하면서 적자의 늪에 빠졌다. 게다가 2000년대 초 미국과 영국이 인간 유전자에 대한 특허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유전자 특허를 확보해 사업을 확대하려던 계획도 틀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약 100억원을 들여 지은 DNA 합성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투자받은 돈을 화재 복구에 쓰면서 인력 구조조정까지 해야 했기에 주변에선 회사가 지속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도 많았다”고 박 대표는 회상했다.
그래도 ‘상용 유전자 기술의 완전 국산화’라는 창업 목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존 DNA 분석 서비스를 고도화, 다양화하면서 또 다른 유전자인 RNA, 분자진단, 유산균 등으로 연구개발 폭을 넓혔다. 갖가지 난관을 뚫고 확보한 이들 기술에 최근 시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WHO 등재와 함께 분자진단 기술 상용화가 가시화한 걸 계기로 올해 바이오니아는 흑자 전환을 바라보고 있다. 모유에서 분리한 락토바실러스 유산균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체지방 감소 기능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제품으로 출시됐다. “한 달 동안 생산한 유산균 제품 5,000병이 5분 만에 팔려나갈 정도로 반응이 좋아 국내는 물론 미국과 유럽에 대량생산 체계를 갖춰 오는 10월부터 추가 공급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박 대표는 말했다.
RNA 기술에 거는 기대도 크다. 세포의 생존과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RNA가 인체 내에는 약 2,600가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바이오니아는 이 중 약에 내성이 생긴 폐암 세포를 죽이는 능력을 가진 마이크로RNA를 선별해 특허를 받았다. 암 치료의 최대 장벽인 내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확보한 셈이다. 2019년 마이크로RNA 임상시험을 시작하기 위해 7월부터 관련 설비 투자에 들어갈 예정이다. 바이오니아는 남성형 탈모의 원인이 되는 모근의 특정 단백질만 콕 집어 공략하는 RNA도 찾아냈다.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일반적인 탈모 치료제를 쓰면 머리카락은 나지만 여성성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 RNA로 탈모 방지제를 개발하면 부작용 걱정을 덜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오니아가 생명공학의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상용화에 성공한 기술 중 3가지가 노벨상을 받은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1962년 수상한 DNA의 이중나선 구조, 1993년 DNA 증폭 반응, 2006년 RNA 조절 기능 등이다. 모두 바이오니아가 국내에서 처음 출시한 제품이나 서비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바이오벤처 1세대로서 뿌듯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강점으로 작용했던 기술 다양성이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집중력을 떨어뜨려 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다”는 게 요즘 박 대표의 걱정이다. 안고 갈 분야와 독립시킬 분야를 냉정히 구분해야 할 시기다. “지난 25년 동안 이겨낸 수차례 위기를 교훈 삼아 미래 분자진단 시장의 개척자가 되겠다”고 박 대표는 다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