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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인기 ‘여성 도지사’ 바람, 도쿄도 집어 삼키나

입력
2017.06.3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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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머리띠 수건 두른 지지자

“고이케” 연호하며 몰려 들어

“쟁점 모르지만 아베 일색 싫어”

여론은 고이케 신당 근소 우위

자민당, 도쿄선 되레 야당 같아

도쿄도 42개 선거구 127명 선출

고이케ㆍ공명 연대 과반 여부가

아베정권 장악력에 영향 미칠 듯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지난달 24일 도내 JR미타카역 인근에서 거리 유세를 하며 유권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유명 톱스타가 등장한 듯 수많은 시민이 운집해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지난달 24일 도내 JR미타카역 인근에서 거리 유세를 하며 유권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유명 톱스타가 등장한 듯 수많은 시민이 운집해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잠시 후 도쿄(東京)의 ‘스타’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ㆍ65) 도쿄도지사가 방문합니다. 도쿄 개혁을 위해, 낡은 정치와 도의회를 바꾸기 위해 우리 미타카(三鷹) 지역에 옵니다. 오늘 같은 기회가 많지 않으니 직접 말씀을 듣고 가세요!”

2일 일본 도쿄도(東京都) 의회 선거를 앞두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첫 주말. 지난달 24일 오후 4시 JR미타카역 주변이 들썩거렸다. 요즘 일본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정치 여걸’ 등장에 주말 인파가 갈 길을 멈추고 유세차량 앞으로 몰려들었다. 마치 연예인을 기다린 듯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표정들이다. 고이케는 현역 도지사로선 처음으로 사진집을 발간해 초판 1만5,000부가 매진됐을 정도다.

건장한 경호원 5~6명에 둘러싸인 고이케가 나타나자 “멋있어요”라며 함성이 터졌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구태의연한 옛 조직(자민당)에 싫증 나지 않습니까. 새롭게 만든 ‘도민퍼스트회’가 도정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외쳤다. 연단 앞엔 그의 상징이 된 녹색 머리띠나 수건을 두른 지지자들이 고이케를 연호했고 시민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총리 목소리밖에 안 들리는 폐쇄사회”

고이케 지사는 이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가 국제정치를 공부한 변호사이자 글로벌 인재라며 “우리는 최고의 후보들을 여러분에게 선보인다. 지구 전체를 보면서 도쿄를 어떻게 끌고 갈지 큰 그림을 그릴 후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2,700만엔(약 2억7,000만원)이던 도지사 연봉을 절반으로 깎았다. 고령자 간병과 복지, 도쿄올림픽 등 큰돈이 들 곳이 많아서다”라며 “여기 있는 우리 후보도 급료를 20% 삭감할 생각이니 각오 단단히 하시라”고 폭소를 유도했다.

지난해 7월 도쿄도지사 보궐선거 당시 여야 정치권에선 마땅한 후보감이 나오지 않고 선거에 대한 관심도 미미했다. 이때 자민당 고이케 중의원이 당의 허락도 받지 않고 스스로 출마하겠다며 공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여야 기성정당이 내세운 후보를 거짓말처럼 물리치고 당선됐다. 자신의 유세장에 녹색이라면 뭐든지 들고나오라고 말해 화제를 남겼고 별 특징 없는 다른 후보들을 쉽게 압도했다.

일본 유권자들이 뭔가 답답함에 눌려있던 것일까. 그다지 치열한 쟁점도 없이 무주공산이던 도쿄도지사를 그렇게 집어삼켰다. 이번 도쿄도 의회 선거도 비슷한 느낌이다. 연설을 듣던 아다치 세츠코(安達節子ㆍ67)씨는 “솔직히 선거쟁점이 뭔지는 잘 모른다. 일본은 지금 자민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목소리밖에 없고 폐쇄적으로 가고 있다”며 “뭔가를 바꾸지 않는 일본인의 고정관념이 요즘 많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선 원래 소속된 회사가 후보를 선택하면 회사원들 모두 그 후보를 찍는다”며 “이제부터는 당이 아닌 인물을 보고 내 마음대로 찍겠다”고 했다. 옆에 있던 30대 여성은 “고이케 신당이 도쿄를 뭐든지 바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지역 일군을 뽑는 선거지만 이젠 지역 정치부터 관심을 두기로 했다”고 거들었다.

견제론 호소 자민당은 ‘야당 모드’

오후 6시 이번엔 자민당 쪽 거리유세장이다. 도쿄 닛포리(日暮里)역에서 도쿄도연합회장인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간사장대행의 지원 연설이 시작됐다. 1시간 전 열광적인 고이케 연설회장과는 영 분위기가 달랐다. 이 점을 자민당 후보 측 이와타 카즈키(岩田嘉壽希)씨에게 묻자 “지방선거지만 한국의 대통령선거만큼 뜨겁다. 일본에선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선거열기”라고 과장된 설명이 돌아왔다. 그는 “고이케 신당이 우리에겐 눈 위의 혹 같은 존재다. 인기 위주 보여주기식 퍼포먼스만 하고 특별한 게 없다”면서 “신당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우리는 뚜벅뚜벅 갈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마이크를 잡은 시모무라 중의원은 “매우 어려운 선거지만 어떻게든 자민당 후보를 도의회에 보내야 한다”며 “도쿄 개혁도, 2020년 올림픽도 대성공시키려면 자민당이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고이케 지사 1명에게 도쿄를 맡겨둘 순 없다. 도지사가 대통령이상 권리를 갖고 있다. 권력을 견제하려면 의회가 작동해야 하며 여러분의 1표가 큰 힘을 준다”고 호소했다.

이처럼 지금 도쿄도에서 야당은 자민당이다. 여론조사들에 따르면 근소하게 고이케 신당이 앞서고 있다. 자민당은 아베와 고이케 대결구도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정작 보수지지층에겐 두 지도자의 대결임을 적극 강조하며 위기론을 설파하는 모습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지켜보던 한 남성은 “자민당이 도쿄도지사를 방해한 적도 없는데 구태세력으로 몰고 있다”며 “도쿄의 명물인 쓰키지(築地) 수산시장을 도요스(豊洲)로 옮기는 문제도 오염이 됐다고 조사하는 것은 좋은데 결국 시간만 지연시킨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본 도쿄 JR닛포리역에서 시모무라 하쿠분(맨 오른쪽)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 도의원 후보 지원 연설을 하고 있다. 구름 청중을 몰고 다니는 고이케 도쿄지사의 유세 현장과 대조된다.
일본 도쿄 JR닛포리역에서 시모무라 하쿠분(맨 오른쪽)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 도의원 후보 지원 연설을 하고 있다. 구름 청중을 몰고 다니는 고이케 도쿄지사의 유세 현장과 대조된다.

지지율 급락 중인 아베 정권 중대 기로

쓰키지 시장 이전문제는 최대 쟁점이다. 고이케는 지난해 8월 취임 후 토양오염 안전성 검토가 필요하다며 같은 해 11월 예정됐던 쓰키지 시장 이전계획을 보류시켰고, 행정개혁을 기치로 내건 그의 대표사례로 거론돼왔다. 도쿄 시민들은 오염된 지역으로 시장을 옮긴다니 불안해하다 고이케 지사가 제동을 걸자 환호했지만, 슬슬 자민당과 보수언론이 지지부진한 이 문제를 비판하고 여론도 ‘도요스 피로증’에 편승하자 고이케 지사가 5월까지 이전을 끝내겠다고 돌아섰다.

이번 선거에서는 127명의 도의원을 42개 선거구별 인구에 따라 1명에서 최대 8명씩 선출한다. 고이케의 도민퍼스트회가 공명당과 연대해 과반을 확보할지 여부가 관건이다. ‘사학스캔들’로 벼랑 끝 위기에 처한 아베 총리의 자민당이 제1당 자리를 내줄 경우 정국 장악력이 급속히 약화될 수 있다. 최근 도의회 선거결과가 이후 벌어진 국정선거(중의원 또는 참의원선거) 표심의 예고편이 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닛포리 유세장에 있던 정치컨설턴트 무로후시 겐이치(室伏謙一ㆍ44)씨에게 결과예측을 부탁했다. 그는 “고이케 지사를 추후 총리감이라고 생각지 않지만 자민당이 지면 정치권에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도민퍼스트회가 제1당이 되고 자민당이 크게 지지는 않는다. 정책면에서 일관성이 있는 공산당 의석이 늘고 정체성이 불확실한 민진당은 현저하게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글ㆍ사진 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현역 일본 도지사 중 처음으로 사진집을 낸 고이케 유리코 도쿄지사.
현역 일본 도지사 중 처음으로 사진집을 낸 고이케 유리코 도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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