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효진의 동물과 함께 떠나는 세계여행] ⑩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도심에서 전철로 30분 걸리는 바투 동굴은 힌두교 신자들과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곳이다. 거대한 동굴 내부에 사원이 있고 동굴 앞에는 42m 높이의 거대한 힌두교 신 무루간 입상이 있다. 동굴 주변에 원숭이들이 많다고 하기에 가보았다.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입구에 거대한 원숭이 상이 있었다.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원숭이 신 ‘하누만’이다. 그의 이야기가 중국으로 전해져 서유기의 ‘손오공’이 탄생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팔짱을 낀 채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하누만 아래쪽에는 게잡이원숭이들이 바닥에 있는 음식물을 먹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 하나의 종에게 붙인 수식어는 다양하다. 농작물을 먹는 유해동물, 홍콩과 대만 등지에서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외래침입종, 전 세계적으로 쓰이는 실험동물, 그리고 한 때 국내 TV에 나온 원숭이 ‘삼순이’같이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애완동물이기도 하다.
동굴 사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원숭이들이 많았다. 아이스크림, 과자, 음료수 등 관광객들이 주는 다양한 음식이나 쓰레기를 먹는 원숭이들을 보면서 ‘저것이 과연 신의 모습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숭이들이 살던 숲 가장자리를 개발하면서 서식지가 사라지자 게잡이원숭이들 일부가 인간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살던 집과 먹이터를 잃고 사람에게 과도하게 의지하는 야생동물을 보노라면 언제나 씁쓸하다. 그런 동물들은 야생에서 먹이를 찾는 기술을 잃는다. 배우지 못한 그들의 새끼들도 계속 그렇게 살아간다. 야생의 다양한 과일과 씨앗을 주식으로 하는 그들의 건강에 사람들이 주는 음식은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원숭이들은 또 먹이를 빼앗으려고 서로 싸우고 먹이를 들고 있는 사람도 공격한다. 먹이를 얻으려고 한 곳에 모여 있어 질병 전파 확률도 높다. 이런 점을 모르는 사람들은 먹이를 주며 잠시 이어진 동물과의 일방적인 교감이 그저 신기하기만 한 것 같았다. 이런 관광지뿐 아니라 원숭이들이 사는 마을에는 쓰레기통을 뒤지고 주변을 더럽히고 애써 키워 놓은 바나나와 망고들을 훔쳐가는 그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유해동물이라는 이유로 2012년 약 10만 마리의 게잡이원숭이를 죽였다.
그러나 살처분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완충지대를 조성해 먹이를 공급해 사람과 마찰을 줄이고 지역민과 관광객들이 지켜야 할 수칙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계단을 내려오며 동물을 신성시한 옛 사람들의 마음을 되새겨봤다. 동굴 사원으로 가는 272개의 계단은 인간이 살아가며 평생 짓는 죄의 개수를 뜻한다고 한다. 지금과 같이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동물을 대한다면 우리가 올라야 할 계단이 하나 둘 늘어나지 않을까. 더불어 원숭이 상을 우러러보도록 크게 만든 이유가 경외심을 갖고 동물과 거리를 지키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라는 뜻으로 보였다.
글·사진= 양효진 수의사.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동물원 동물큐레이터로 일하고, 오래 전부터 꿈꾸던 ‘전 세계 동물 만나기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시작했다. 동물원, 자연사박물관, 자연보호구역, 수족관, 농장 등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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