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9일 문재인 정부의 조세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중장기적 부자 증세와 서민 감세’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세제개편을 조속히 추진하되, 논란이 있거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과제는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설립해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쳐 내년 이후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최근 경유세 인상 얘기를 꺼냈다가 논란이 일자 기획재정부는 “인상하지 않겠다”고 물러난 바 있다. 세금인상 문제는 늘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게 바람직하다.
박광온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이날 “올 하반기에 전문가와 각계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인사들로 구성된 조세ㆍ재정개혁 특별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 특위에서 법인세율 인상, 수송용 에너지세제 개편 등 찬반 대립이 첨예한 문제를 논의해 추진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 대주주, 고소득자, 자산 소득자에 대한 과세는 강화하고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산층, 서민층에 대한 세제 지원은 지속해서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올해는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추진 가능한 세제개편을 하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조세ㆍ재정 개혁과제는 논의 기구를 거쳐 내년 이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새 정부가 조세정책을 통한 소득재분배 정책에 일단 시동을 건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 여기에는 지난 10년간 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부자감세 정책으로 조세정책이 왜곡됐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법인세나 경유세 인상 등의 민감한 문제는 위원회로 넘기겠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조세정책의 급격한 방향전환은 없을 것이라는 시그널로도 비친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종합부동산세 도입으로 반발이 거세지자 조세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조세개혁을 시도했던 것을 떠올리게도 한다.
일단 방향은 좋아 보인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조세개혁의 완급조절까지 하겠다니 나무랄 일은 아니다. 다만 위원회의 구성을 합리적이고 심도 있게 꾸리는 것이 남은 숙제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178조원에 달하는 각종 공약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느냐다. 국정기획위는 공약 실천 재원 마련은 예산 전체에 대한 수정 없이도 충분하다는 입장이지만, 박근혜 정부처럼 허구적인 ‘증세 없는 복지’를 외치면서 담뱃값이나 인상했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증세 시기를 못 박지 않은 채 중장기 과제로 돌린 것은 자신감 결여 탓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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