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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원자력계 전문가주의의 한계

입력
2017.06.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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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탈핵’을 발표한 이후 논쟁이 뜨겁다. 정부는 후속조치로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과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발표했다. 에너지 정책은 시민생활과 경제, 산업과 너무도 밀접해서 이런 논쟁이 촉발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원자력계의 반발과 일부 경제지의 가짜뉴스와 비난이 도를 넘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력계는 핵발전소가 당장이라도 멈출 것처럼 반응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은 연설문에 나온 것처럼 “핵발전소를 긴 세월에 걸쳐 서서히 줄여가는 것”이다. 이전 정부가 추진하던 11기 핵발전소 중에 5기가 건설 중인데, 대통령은 공정률이 낮은 신고리 5,6호기를 공론화 대상으로 제시했다. 정부의 탈핵 시점은 40년 후로 대통령이 후보시절 지역주민들과 전면중단을 약속한 것에 비해 크게 후퇴한 것이다.

더불어 후쿠시마 사고가 지진 탓이냐 아니면 쓰나미 때문인가를 따지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 일본의 원자력계가 안전을 장담했음에도 사고가 발생했고, 그들은 책임지지 않았다. 후쿠시마의 교훈은 100% 안전한 핵발전소는 없다는 점이다. 핵발전소 사고는 자연재해뿐 아니라 인간의 실수, 기계결함, 비리, 테러 등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

핵발전소 방사능 오염 사고를 비행기나 선박사고와 비교하는 것도 맞지 않다. 후쿠시마 사고로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피난했고, 방사능 제거 작업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사고 처리 추산 비용은 2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비행기나 선박사고가 처리비용에 200조가 넘고, 도시와 마을을 통째로 폐쇄해야 하는가.

원자력계는 우리나라가 고립된 전력망이기 때문에 전력수급과 재생가능 에너지에 한계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특정 에너지원에 집중되지 않는 에너지 믹스가 중요하고, 수요관리를 포함한 분산형 전력설비가 중요하다. 지리적 여건을 지적한다면 핵발전도 마찬가지다. 고리 핵발전소 인근 30km 반경에는 무려 382만 명이 살고 있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울산석유화학단지, 부산항 등 경제의 핵심시설도 위치해있다. 좁은 국토에 인구밀도도 높은 곳에서 이토록 고밀도로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원자력계는 에너지정책 수립에 참여한 인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비전문가’들이 세운 계획이라고 공격한다. 에너지정책 결정은 ‘원자력’ 전문가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인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다. 독일 탈핵도 시민들의 참여와 투표를 통한 정치적 의사결단을 통해서였다. 전문가의 역할은 시민을 대신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지혜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내용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더구나 양심을 저버리고 이권을 대변하는 전문가는 위험하다. 4대강 사업, 가습기살균제 사건,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사건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했다. 전문가가 신뢰받으려면 책임을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2012년 고리1호기 전원상실 사고, 2013년 초유의 핵발전 부품비리 사건, 2016년 원자력연구원의 방사능폐기물 불법 매립과 연구결과 조작에 침묵했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시작으로 탈핵 로드맵 논의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 필요한 것은 충분한 시간과 투명한 정보공개, 시민참여이다. 전기가 남아돌고 있다. 원자력계는 수급불안이나 전기요금 급등을 부풀려 시민들을 겁주기보다는 공론의 장에 성실하게 참여하기를 바란다. 가짜뉴스와 언론 작업이 단기간 여론을 호도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간에 걸친 검증과 토론을 진행하면 우리는 민주주의 성숙도만큼 진실에 도달할 것이다. 우리도 이제 에너지정책을 논의할 때 ‘민주주의’라는 것을 구현해보자.

이유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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