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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의 판사의 길] 법은 약속, 약속은 법

입력
2017.06.2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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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관계의 세계이고, 인간의 역사는 관계의 역사다. 인간에게는 출생하는 순간부터 관계가 숙명적으로 다가온다. 인간이 공동체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삶에는 자연이라는 존재가 필연이고, 더 나아가 신의 존재까지 받아들이게 되면 인간의 관계는 인간을 넘어 자연과 신에게까지 이르게 된다.

인간 사회에서 관계의 출발점은 부부다. 거기에서부터 부자, 형제, 친ㆍ인척 관계가 파생되고, 더 나아가 친구, 이웃, 거래 관계로 확대되어 간다. 공자는 인간관계를 다섯 가지, 즉 군신, 부부, 부자, 장유, 붕우 관계로 나누어 설명한 바 있다. 이 다섯 가지 범주에도 당대의 사회적 관계가 녹아 있지만 오늘날에는 지구촌을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하는 등 그 범위가 갈수록 확대되어 가고 있어 공동체를 통해 만들어지는 관계의 양태 또한 다채로워지고 있다.

한번 관계가 만들어지면 계속 유지될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고정되거나 변하지 않는 관계는 없다. 관계에도 형성, 유지, 소멸이라는 나름의 역사적 과정이 존재한다. 그러한 관계의 추이 과정에서는 지켜야 할 ‘준칙’(準則, maximum)이라는 것이 있다. 혼인관계를 예로 들면, 혼인관계의 형성에는 서약과 혼인신고가 요구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부애와 정조(貞操)와 상호부양이 전제되며, 그 소멸에 있어서는 이혼신고가 필요하다. 이와 같이 관계의 형성, 유지, 소멸에 있어 지켜야 할 준칙이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법’이다. 한마디로 말해 법은 ‘관계의 준칙’인 셈이다. 3권분립론을 제창한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법은 사물의 성격에서 유래하는 필연적 관계’라고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법’이라고 하면 흔히 강제력을 지닌 ‘실정법’으로만 한계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정법은 다양한 관계의 준칙 중에서 사회의 유지에 있어 필요불가결하다고 여겨지는 사항들을 국민의 합치된 의사에 따라 공식화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관계의 준칙이라고 해도 국민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한 부분은 실정법으로 규정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효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준칙인데, 자식이 부모에 대하여 효도를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이유로 ‘효도에 관한 법률’ 등을 만들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녀는 처벌한다’는 일반규정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효도가 무엇인지, 효행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보기는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위 주장을 실정법으로 수용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녀들에게 부모양육비지급의무를 부담시키는 규정을 두어 간접적으로 효행을 장려하는 정도만 가능하다.

하지만 실정법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하여 그들을 법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이것은 우리의 언어습관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법의 테두리 속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법뿐만 아니라 도덕률,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신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의 준칙도 포함시켜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삶을 관조하는 데 유익을 준다.

관계의 준칙에는 그것을 지키겠다는 개인적 및 사회적 약속이 담겨 있다. 다만 실정법에 수용된 관계의 준칙은 구성원 모두가 지키기로 한 약속이라는 점에서 ‘일반약속’으로, 실정법에 수용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관계의 준칙은 당해 준칙을 받아들인 당사자만이 지키기로 한 약속이라는 점에서 ‘개별약속’으로 규율하고 있을 뿐이다. 일반약속이든 개별약속이든 모든 약속은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므로 결국 법은 신뢰라는 기반 위에 존재한다. 신뢰는 관계의 형성 및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초석이고, 이것이 없으면 인간사회는 안정과 평화를 유지할 수가 없다.

예컨대,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결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고, 도로에서의 차량통행규칙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두려울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도미노처럼 또 다른 두려움을 낳고 종국에는 사회 전체에 불안을 확산시켜 사회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영국의 사상가인 토마스 홉즈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는 불신의 길 끝에 기다리고 있는 혼돈과 무질서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뢰가 무너졌다는 것은 법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는 법대로 하길 좋아하지만 실제로는 법이 많이 또 자주 무시되고 있다. 존엄하다는 인간의 말이 종잇장보다도 가볍게 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공적 의견이나 선거공약 등 공인이 내뱉은 말은 국민 전체를 향한 약속이므로 일반인이 특정인에게 한 약속과 그 무게감이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런 공적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불신의 늪에 빠져 그 어떤 약속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한 악영향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약속은 어떤 상황에서든 지켜내야 한다. 법은 약속이고, 약속이 곧 법이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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