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6월 29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펜실베이니아주 가족계획협회 남동지부 대 케이시’ 사건 판결을 내렸다. 민주당 출신 주지사이면서 강경한 낙태 반대론자였던 로버트 케이시 당시 주지사가 주법으로 낙태를 어렵게 만들자 협회가 제기한 소송이었다. 당시는 로널드 레이건에 이어 조지 부시가 집권해 공화당이 11년째 집권하던 때였고, 연방대법관도 보수 법관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케이시를 비롯한 보수진영은 20년 전의 ‘로 대 웨이드 사건’ 판결 즉 낙태 합법화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라 여겼다.
73년 연방대법원은 셋째를 임신한 텍사스 주 댈러스의 21세 여성 노마 매코비가 지방검사 헨리 웨이드를 상대로 벌인 낙태 허용 소송에서 “태아가 산모의 자궁 밖에서 생존이 가능한 시기에 이르기 전, 임신 여성은 어떤 이유로든 임신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임신 마지막 3개월 이전이면 낙태를 허용한 그 판결로 미국의 낙태가 사실상 합법화했다.
케이시는 그 한도 안에서 낙태 요건을 최대한 까다롭게 만들어 사실상 낙태권을 제한할 참이었다. 즉 의사 상담 후 24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태아 및 낙태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하고,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나 판사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기혼자는 배우자에게 그 의사를 알리도록 했다. 92년 대법원은 펜실베이니아 주법의 낙태 규제를 위헌으로 판결하면서, 낙태 금지요건으로 ‘여성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면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 말은 거꾸로, 여성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각 주 정부가 낙태 규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거였다.
‘과도한 부담’이라는 애매한 단서 조항은 미국의 낙태권에 지금까지 ‘과도한’ 부담이 돼 왔다. 주법과 자치조례 등을 통해 낙태 시술 병원의 시설기준을 강화하거나, 보험 약관에서 낙태를 비급여 항목으로 바꾸는 주들이 늘어났다. 지난해 위헌 판결을 받은 텍사스 주의 낙태 제한법(HB2)이 2013년 주 의회를 통과한 것도 그 예였다. 임신 20주 이후 낙태를 금하고, 과도한 시설기준과 응급 환자이송 체제 등을 의무화한 법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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