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두 번 울리는 보이스피싱 ‘만연’
기관사칭형, 대출사기형, 납치사기형 등
“대부분 개인의 절박함, 불안심리 이용”
“금융ㆍ사정기관선 절대 돈 요구 않아”
“개인정보가 유출됐으니 통장의 1,100만원을 인출해 집 냉장고에 넣어두세요.”
부산 영도에 사는 이모(68ㆍ여)씨는 지난 27일 오후 자신을 금융감독원 직원이라고 밝힌 한 남성에게 전화를 받았다. 이씨는 어눌한 말투로 미뤄 보이스피싱 사기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씨는 수화기 너머로 “은행에 간다”고 말한 뒤 파출소로 향했고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이씨 집에 잠복해있다 조직원 윤모(41)씨를 사기 혐의로 붙잡았다.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유형이 사정당국의 제재와 홍보가 강화되는 것에 맞춰 날로 다양해지고 있어 시민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근년 들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014년 2,595억원을 기점으로 2015년 2,444억원, 지난해 1,919억원 등 감소 추세다. 그러나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피해 신고만 4만5,748건에 이를 정도로 여전히 만연한 상태다.
강화된 단속을 비웃듯 보이스피싱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검찰청 등으로 속이는 기관사칭형, 대출을 받으러 갔다가 대포통장만 빌려준 꼴이 되는 대출사기형, 자식이 납치됐다고 속이는 납치사기형 등이 그것이다.
특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보이스피싱 조직 자금세탁에 관여하게 되는 대출사기형은 피해자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한 악의적인 범죄다. 지난 3월 대출업체를 찾은 A(52)씨는 업체에서 신용등급을 지적 받고 금융거래를 제안 받았다. 입출금 내용이 쌓이면 신용등급이 올라가는데 대출업체에서 거액을 입금 시켜줄 테니 이를 뽑아 현장의 직원에 건네라는 것이다. A씨는 자신의 계좌번호를 알려줬고 1,000만원을 입금 받았다. A씨는 이를 은행에 대기하던 직원에게 건넸지만 이후 대출업체는 A씨의 연락을 피했다.
알고 보니 이들은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다른 보이스피싱 피해자 돈을 A씨 계좌로 송금케 해 인출했다. A씨는 “수상한 대출업체가 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수사관이 A씨에게 받은 연락처로 이 업체에 연락하자 같은 수법으로 경찰관 계좌에 1,500만원이 입금됐다. 경찰은 현장에 있던 조직원 문모(26)씨를 긴급 체포해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자녀를 납치했으니 돈을 준비하라”는 납치사기형은 가장 잘 알려진 수법이다. 그러나 실제 전화를 받으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피해자들은 말한다.
주부 김모(59ㆍ여)씨는 지난 7일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아들을 납치했다는 조직의 말에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어떻게 알았는지 아들의 나이를 말하며 납치했다고 했고, 수화기 너머에서 아들과 비슷한 목소리의 비명이 들렸다”며 “나중에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와 돈을 보내지 않았지만 그 때는 보이스피싱이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밖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지인을 사칭하며 송금을 요구하거나 주민등록번호, 이체비밀번호, 통장비밀번호, 보안카드 일련번호 등 개인정보를 빼내 피해자 계좌의 돈을 빼돌리는 등 보이스피싱 유형은 이루 셀 수가 없다.
안영봉 부산경찰청 수사1과 수사2계장은 ”보이스피싱은 개인의 절박함과 불안한 심리를 이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금융기관이나 사정당국에서는 절대 돈을 요구하거나 수수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없고 이를 요구하는 경우는 모두 보이스피싱이니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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