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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리뷰]‘옥자’, ‘잔혹 동화’는 순수로 구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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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리뷰]‘옥자’, ‘잔혹 동화’는 순수로 구원받았다

입력
2017.06.2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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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가 개봉한다. 넷플릭스 제공
'옥자'가 개봉한다. 넷플릭스 제공

‘옥자’는 봉준호 감독 작품 중 가장 귀여운 영화로, 마치 동화를 보듯 쉽게 다가온다. 오프닝을 압도하는 미란도(틸다 스윈튼 분)의 과장된 세계가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어린 시절 잠 못 들게 만들었던 무서운 동화다. 봉 감독은 유머와 함께 강렬한 경고를 건넨다.

이를 위해 영화는 전반적으로 ‘반어’와 ‘대조’를 바탕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영화의 핵심 이미지인 인물과 배경은 동양의 작은 산골에 사는 소녀 미자(안서현 분)와 동물 옥자, 미국의 대도시에 사는 성인들로 설정돼 있다. 두 인물군이 상징하는 것은 자연과 자본주의다. 봉 감독이 동양인이기 때문에 억지로 동양인을 캐스팅해 집어넣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스토리는 자연이 거대한 기업에 맞서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분위기는 평화로움과 심각함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심각한 상황에서 경쾌한 음악까지 흐르고 나면, 이질적인 두 개의 부조화 덩어리는 서로 극렬하게 충돌한다. 표면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이들로 인해 웃음이 나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뼈가 있다.

이런 극과 극의 이야기를 잇는 것이 바로 눈물이 날 정도로 사랑스러운 슈퍼 돼지 ‘옥자’다. 미자의 얼굴에 거대한 몸뚱이를 부비는 옥자는 굉장히 사랑스러워서 관객의 입가에 미소를 끊이지 않게 한다. 특히 미자가 옥자의 배 위에서 자는 신은 ‘이웃집 토토로’를 연상시키며 평화로움을 선사한다.

처음 이 영화의 제목이 공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은 ‘옥자’가 주인공(사람)의 이름일 것이라고 오해했다. 하지만 옥자는 돼지의 이름이고, 주인공 소녀의 이름은 미자다. 한국에서 같은 항렬인 경우 돌림자를 쓰는 것처럼 두 주인공은 마치 자매처럼 이름 지어졌다. 봉 감독은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종(種)도 출생지(초반 옥자의 고향은 칠레 농가로 알려져 있다)도 다른 옥자와 미자가 모든 것을 뛰어넘고 가족이 되지만, 둘 사이에 자본주의라는 방해자가 등장한다. 품종개량으로 옥자를 만든 글로벌 기업 미란도의 루시 미란도는 옥자를 다시 데려와 프로젝트에 이용하고자 한다.

그동안 옥자와 미자가 살았던 산속은 두 인물들에게 놀이터이자 다른 생물들과 순리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옥자를 구하기 위해 도시로 나온 미자는 무채색의 양복 부대 사이에서 혼자서만 빨간 점퍼를 입은 채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올려다본다. 앞서 말한 대조성을 극단적으로 이미지화해서 보여준 쇼트다.

미란도는 결국 옥자를 미국으로 데려오는 것을 성공한다. 그가 미자의 가족인 옥자를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사육하고 컨베이어벨트에 태워 상품화하는 것은 더 이상 인간들도 인간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 과정에서 미란도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미자까지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옥자를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 김군(최우식 분)은 미란도의 기업의식 부재와 비정규직의 비애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옥자'가 개봉한다. 넷플릭스 제공
'옥자'가 개봉한다. 넷플릭스 제공

또 다른 흥미로운 존재는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다. ALF는 동물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이를 위해 옥자를 위험한 곳에 보내야 한다는 딜레마를 가진다. 지옥인 줄 모르고 보냈다는 제이(폴 다노 분) 측과 예상했다는 레드(릴리 콜린스 분) 측의 갈등은 ‘알지 못했다’는 말 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세상을 기만했는지 알게 해주는 요소다. 결국 자연은 이런 저런 이유로 인간의 목적에 따라 이용되고 만다.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도 이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인 미자와 미국인 제이의 통역을 돕는 것은 케이(스티븐 연)다. 그의 얼렁뚱땅 통역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그로 인해 비극이 펼쳐지기에 씁쓸해진다. 통역이란 특권 중 하나다. 양쪽에서 통역을 전적으로 믿기 때문에 통역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도대로 결론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지식을 가진 사람이 거짓을 말하더라도 상대방은 그것이 거짓인지 모른다. 미란도 역시 미자가 영어를 알아듣자 조심하기 시작한다. 이는 거대 자본의 오만함이다.

현대사회에서 순수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란 의문이 들게 될 때쯤, 옥자와 미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성이 이 차가운 현실 속에서 유일하게 지켜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 해준다.

이런 이야기를 봉 감독이 가상의 동물을 대상으로 그려낸 것은 의미가 깊다. 2006년 가상의 괴물과 사투를 벌였던 ‘괴물’에서는 주한미군의 불법 방류에 의해 만들어진 크리처물로 경각심을 일깨웠다. ‘옥자’에서는 인간이란 괴물에 의해 가상의 존재가 파괴되는 모습을 그렸다. 이번엔 공포심보다는 연민과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감정적이지만 억지스럽지는 않다. 주인공 옥자가 말 한마디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준 따뜻함은 언어와 상관없이 전 세계를 이해시킨다.

봉준호의 놀라운 상상력은 판타지이지만 지극히 현실과 맞닿아 있다. 창의적인 소재로 보편적인 태도를 풀어가는 것은 봉 감독의 특기이기에 이번 역시 전 세계를 사로잡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옥자’는 오는 29일 넷플릭스를 통해 190국에 제공되며, 국내에서는 멀티플렉스를 제외하고 대한극장-서울극장 등 약 80개 극장에서 개봉한다.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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