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선착순 입학원서 배부
학부모들은 해먹ㆍ돗자리서 밤샘
주 2회 석달 영어수업이 90만원
사설 학원 앞 오토바이로 장사진
베트남의 미래를 밝게 보는 이유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높은 교육열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주변국에 비해 근면, 성실한 데다 새것을 배우려는 의지도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 자식 교육을 위해 자신의 식비를 줄였다는 부모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고, 산골 집을 팔아 도시의 학교 옆에서 사글세를 사는 부모의 사연도 ‘미담’으로 소개될 정도다. 지난 22~24일 진행된 베트남 전국고교시험(수능시험), 그 고사장 안팎의 분위기를 통해 한국 못지않은 베트남의 교육열을 들여다봤다. 이곳은 8월 말에 신학기가 시작된다.
수능 시험 기원은 눈에 띄지 않게
지난 22일 오전 6시 호찌민시 중심가에 자리잡은 르 꾸이 동 고등학교 정문. 시험 시작까지는 2시간 남았지만 수험생들을 태운 오토바이들이 속속 도착했다. 초등 5, 중등 4, 고등 3년 등 12년 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거나 손을 잡아주는 부모 모습이 간혹 눈에 띌 뿐 유난스럽다고 느낄 만한 행동의 부모들은 보이지 않았다. 교문 양쪽으로 도열한 대학생 자원봉사자들도 ‘파이팅’ 같은 구호 대신 플래카드만 조용히 들어 보였다. 부모들이 가지런히 주차된 오토바이 위에서,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장면이 조금 이색적으로 보였을 뿐이다. ‘만점 기원 기도’를 기대했던 기자에게 한 학부모는 “아침 일찍 집에서 하고 나왔다. 그런 건 공개된 장소에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험 시작 뒤에도 문에 엿을 붙이거나 손을 모으는 사람은 없었다.
응시생은 모두 86만여명. 전국 2,360여개 학교에서 1일차 언어(오전)ㆍ수리(오후), 2일차 과학ㆍ외국어, 3일차 사회 등 크게 5과목에 대한 시험이 치러졌다. 시험 사이 4시간의 휴식시간에 수험생들은 도시락 등으로 자유롭게 점심을 먹었고, 다음 시험에도 대비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선 탓인지, 낮잠을 자는 학생들도 많았다. 1ㆍ2일차 시험 난이도는 보통.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둡던 학생들의 얼굴은 마지막 시험이 끝나서야 펴졌다. 호앙 후이(18)군은 “드디어 밤에도, 주말에도 나가던 학원 생활이 끝났다”며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 여행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을 태우러 온 부모들도 있었지만 삼삼오오 고사장을 빠져나가는 학생들이 훨씬 많았다.
비슷한 시각 인근의 한 사설 영어학원. 고사장 주변과 달리 그 일대는 아수라장이었다. 아이들을 태우고 온 오토바이들이 학원 수업시간에 맞춰 몰리면서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확성기를 든 경비직원이 정리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수업을 마친 딸(8)을 데리고 나가던 담 반 뚜엔(40)씨는 “어떤 수준의 학원이냐가 문제일 뿐, 영어학원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 집은 없다”며 “3년 전부터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초등 3학년(9세) 때부터 영어를 가르친다.
영어학원 필수, 위장전입도 다반사
외국 기업이 많고, 영어 구사 수준에 따라 직장과 임금이 결정되는 탓에 요즘 ‘영어 학원은 학원 축에도 들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주말에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은 십중팔구 영어학원’이라고 할 정도로 학생들이 영어학원으로 몰린다. 학교 영어수업에 대한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낮은 것도 원인 중 하나다. 딸의 2시간짜리, 주 2회, 3개월 과정 영어수업에 뚜엔씨가 지불하는 돈은 1,800만동(약 90만원). 한달 치 월급에 맞먹는다. 그는 “딸이 미래에 좋은 직장에서 보다 여유롭게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는 주차장에 세워진 오토바이에서, 아내는 강의실 앞에서 2시간 동안 딸을 기다렸다.
등하교와 학원 등원 때 자녀를 실어나르기 위한 오토바이 운전과 기다리는 일은 모두 베트남 부모들의 일상이다. 26일 빈증성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는 수백명의 학부모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거나 가로수에 해먹을 설치해 밤을 새우기도 했다. 선착순으로 입학 원서를 접수 받기 때문인데, 유명한 학교 앞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수년 전 북부 한 지역에서는 서로 먼저 입학원서를 넣으려는 부모들이 몰리면서 학교담이 무너지는 일도 있었다. 호찌민 인문사회과학대의 한 교수는 “국제학교로 보내면 영어 등 모든 게 해결되지만, 보낼 처지가 안 되는 부모들은 이렇게 줄 서고, 달리고, 오토바이를 학원으로 몰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녀 교육에 이토록 신경을 쓰다 보니 부모들은 급여 수준보다 아이들의 등하교를 위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지를 직장 선택의 중요한 조건으로 삼는다. 한국계 중견기업의 인사담당자는 “본사 사무실을 거래처가 많고 공장과 가까운 외곽으로 옮기려 하자 현지 직원들이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며 “결국 시내 중심에서 2㎞ 떨어진 곳으로 이사하는 정도로 계획을 수정했다”고 전했다.
자녀 교육이라면 직장도 바꿀 정도다 보니, 위장 전입은 부지기수다. 주로 시험으로 입학하는 고등학교와 달리 학군에 따라 학교가 배정되는 중학교 입학 전에 횡행한다. 20대 아들과 딸을 둔 도 티 누 화(51)씨는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이사를 하는 것, 그게 안 되면 지인에게 부탁해 주소를 옮기고 해당 학군의 거주증을 받아오는 일은 매우 흔하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는 실제 거주지와 주소지가 달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가열되는 사교육 시장
이 같은 교육열에 대해 학문과 수양을 중시하는 유교문화의 관습과 함께 개발도상국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김태형 호찌민 한국교육원장은 “의식주를 비롯한 복지를 국가가 제공하지 못할 경우 국민은 각자도생의 길을 간다”며 “한창 성장 중에 있는 베트남의 교육열과 사교육 바람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뜨거운 베트남의 교육열을 일찍이 간파한 글로벌 교육기업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도 베트남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대교가 진출해 자리를 잡았고 파고다, 교원, 학교법인 대원도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코트라 호찌민무역관 관계자는 “4월 기준, 베트남 외국인직접투자(FDI) 19개 분야 중 교육은 17위에 그쳤다”며 “교육 분야 투자 제고를 위한 베트남 정부의 움직임이 있는 만큼 관심 있는 기업들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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