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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가 사는 법] 꿈꾸고 도전하라. 그리고 성취하라

입력
2017.06.2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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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용 선수가 GS트로피 코리아 선발전에서 질주하고 있다. 사진 BMW 모터라드 코리아 제공
권혁용 선수가 GS트로피 코리아 선발전에서 질주하고 있다. 사진 BMW 모터라드 코리아 제공

언제나 내 곁에는 모터사이클이 있었다. 마치 공기처럼 가까이. 아버지의 라이딩을 보고 자란 까까머리 시절부터 제대 직후 마련했던 효성 크루즈 2는 평소 꿈꾸던 까만색 가와사키 발칸 800은 아니었지만 첫 바이크여서 무척 애정을 기울였던 기억이다. 1999년 포항 MBC에 입사한 뒤 모터사이클을 고치러 간 정비소에서 꿈의 모델과 조우해 나도 모르게 샀다. 그걸 타고 결혼도 했고 서울로 직장을 옮기면서도 함께 다녔다.

2009년이었다. 회사를 다닌 지 만 10년이 되니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아내를 졸랐고, 다큐멘터리 ‘롱 웨이 다운’을 감상하며 세계일주도 꿈꿨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듯 꿈의 바이크 또한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어디라도 갈 수 있고 존재 자체가 멋진 BMW R1200 GS 어드벤처! 나도 모르게 샀다. 그걸 타고 아이들을 종종 통학시켰고 국내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녔다.

일본 아소산 정상 분화구에서 딸과 함께. 사진 권혁용 제공
일본 아소산 정상 분화구에서 딸과 함께. 사진 권혁용 제공

어느 날 불쑥 사고가 났다. 불법으로 유턴을 하던 차에 받혀 모터사이클은 전손될 정도로 대파됐다. 다행히 보호장구를 완벽하게 착용했고, 언제나 방어운전을 하는 터라 몸은 다치지 않았다. 다시 GS를 구매했다. GS 탄생 30주년 기념 모델! 그게 2012년의 일이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위험한 걸 왜 타냐?”고 묻는데 그들에게 “위험하지 않게 타는 법을 알려주자”는 게 내 지론이다.

그의 본업은 MBC 영상기자다. 사진 최민관 기자
그의 본업은 MBC 영상기자다. 사진 최민관 기자

그 무렵 회사가 힘들어졌다. 언론에 부당한 외압이 가해지던 2012년을 기억하시나? MBC 촬영기자인 내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던 내 자리가 사라졌다. 아니, 우리 부서 자체가 증발했다. 용인에서 주차장 관리하는 보직을 받았고, MBC 아카데미에서 일하라는 인사 지시를 받았다. 촬영기자라는 자부심으로 미친 듯이 일에 빠져 살던 내 열정은 억압당했다. 바로 그 때였다. ‘세계일주를 가고 싶다’는 꿈이 생겨난 건! 일만 하던 사람에게서 일을 빼앗으면 대체 무엇이 남겠는가?

모터사이클 훈련을 통해 삶을 불태웠던 지난 흔적들. 사진 권혁용 제공
모터사이클 훈련을 통해 삶을 불태웠던 지난 흔적들. 사진 권혁용 제공

우연히 참가했던 BMW 이천 투어(BMC 주최)에서 1회 GS트로피 챔피언 출신의 이재선 선수를 만났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몰랐다. 당시 참가자들이 “GS트로피를 꼭 가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게 뭐지?”라고 되물었으니까. 모터사이클을 오래 탔고 평소 체력도 자신 있었던 터라 검색했더니 나도 모르게 “와아”하는 탄성만 질렀다. 동영상을 보면서 혼자 연습하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겨울을 보냈다.

불쑥 성장의 한계가 찾아왔다. ‘재야의 고수’라고 불리는 이재선 선수에게 “한번 보고 싶다. 만나자. 당신이 타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와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고 야산에 올랐다. 그 때였다. 문득 “아, 이제는 여기서 헤어날 수 없겠구나”라는 마력의 순간이 온 건! ‘홀릭’은 현재 내게 닥친 고난을 잊게 해주는 한층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진가를 낸다. 그렇게 현실을 잊기 위해, 한층 힘듦을 억지로 끌어들여 도피를 택했다. 열정적으로 일을 즐기는 이들은 분명 알 거다, 일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상황, 정의를 위해 열심히 싸웠지만 패배했다는 자괴감 말이다. 그렇게 모터사이클 훈련은 회사 생활의 고통을 잊는 탈출구로 기능했다.

권혁용 선수의 질주 장면.
권혁용 선수의 질주 장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빠져들었다. 이재선 선수는 이제 내 사부가 됐다. “체력도 자질도 좋으니 제대로 라이딩 기술을 연마해보자”는 형님의 조언에 온갖 교재를 바탕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그게 불과 2회 GS 트로피 선발을 몇 달 앞둔 시기였다. 일단 참가를 했지만 의구심이 맴돌았다. “내가 과연 완주나 할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참가일은 아버지 기일이었다. GS트로피는 해외에서 열리는 경기라 영어 테스트를 한다. 당시 내게 물었던 심사관의 질문은 이랬다.

“GS트로피는 네게 무엇인가?”

“사실 내 꿈은 아니다. 내겐 세계를 다니기를 꿈꿨던 남자가 있었다. 아쉽게도 꿈은 멈췄고 나는 그의 꿈을 이어나가고 싶다. 눈치챘겠지만 그 사람은 내 아버지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내 아버지 제삿날이다.”

솔직하고 꾸밈 없이 인터뷰에 응했던 권혁용 선수.
솔직하고 꾸밈 없이 인터뷰에 응했던 권혁용 선수.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터라 속내를 불쑥 말해버렸다. 결국 예선은 통과했지만 마지막 순간, “아, 놓쳤다”라고 느꼈을 때 스스로 내려놨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결과는 4등. 3등과 동점이었지만 발을 땅에 디뎌서 받은 감점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았고 오히려 함께 도전했던 사람들을 격려해줬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마지막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자책과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라는 후회가 물밀 듯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칼을 갈았다.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새로운 결심이 섰다.

권혁용 선수가 참가할 BMW 모터라드 2018 GS트로피는 내년 몽골에서 열린다.
권혁용 선수가 참가할 BMW 모터라드 2018 GS트로피는 내년 몽골에서 열린다.

이후의 일정? 2년은 길다면 긴 세월이지만 짧다면 또 금새 사라지는 시간이다. 지독하게 연습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기본, 하루 10km 이상 달리고 자전거를 탔다.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활 스포츠 지도자 자격증’도 취득했다. 평소 운동을 즐기는 터라 솔직히 “GS트로피에 못 가더라도 단련한 몸은 남겠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 연습 무대는 공사장이었다. 일산 향동 지구는 아파트를 짓느라 끊임 없이 변화가 따르던 곳이다. 어제 없던 야트막한 둔덕이 생겨나고 포크레인이 지나간 자리는 깊은 고랑이 됐다. 공사현장 기사들이 와서 나가라고 할 때까지 출근 전에 연습을 일삼았다. 실제 내가 가진 오프로드 기술의 대부분은 공사장에서 연마했으니 아이러니하다. 하천 부지에서도 연습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진 땅과 깎아둔 둔덕만 있다면 무조건 도전했다. 주말은 오롯이 연습에 바쳤다. 멀리 출장간 날이 아니라면 단 하루도 연습을 게을리한 적이 없다.

이제 내게 모터사이클은 이동 수단이 아닌 스포츠의 대상이 됐다. 충청도 수안보에는 망한 스키장이 있다. 엔듀로 모터사이클을 타는 사람들과 섞여서 언덕 오르기를 연습했다. 그 모습을 본 스승께서 “진짜 열심히 연습했구나. 인정한다”고 말했을 때 정말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R1200 GS를 타는 법.
R1200 GS를 타는 법.

가진 것은 바이크 뿐이었던 시절과 많은 것이 달라졌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목표에 한 발짝 다가서는 기분이 든다. 한달 전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손쉬운 기술이 여럿이다. “아, 이거구나. 내가 안되던 시도가 이거였구나!” 그건 다름 아닌 쾌감이다. ‘유레카’의 순간만큼은 정말 짜릿하다. 어려운 기술이 몸에 붙는 순간, 난 해탈의 경지에 오른다. 다른 그룹과 함께 연습할 때는 언제나 세밀하게 관찰한다. 라이벌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나와 비교하고 내 포지션을 체크하기 위함이다. 점점 자신감이 생긴다. “2018년 몽골에 1등으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당시에는 다들 남자의 허세로 받아들였지만, 점점 그런 생각이 굳어진 건 사실이다.

에피소드도 많았다. 내 바이크는 GS 출시 30주년 기념 모델이다. 다들 알다시피 결승에 쓸 수랭 GS와는 느낌이 다르다. 익숙해지기 위해 ‘신형 GS를 구매할까’ 고민할 때 함께 GS 트로피를 준비한 동생의 친구가 아주 저렴한 가격에 나온 매물을 알려줬다. 물론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 사정에도 즉시 샀다. “그래, 기술 연마에 딱 한 달만 힘쓰고 경기 끝난 뒤 되팔자”라는 결심과 함께.

레고 테크닉으로 출시됐던 R1200 GS 피규어와 실물이 오버랩됐다. 사진 BMW 모터라드 제공
레고 테크닉으로 출시됐던 R1200 GS 피규어와 실물이 오버랩됐다. 사진 BMW 모터라드 제공

그렇게 의도대로 끝나면 좋으련만 예선 10일 전에 연습하러 가던 중 마포구 상암동에서 사고가 났다. 자동차 운전자가 인도 쪽 낚시가게를 보다가 실선 구간을 넘어와 내 모터사이클을 받은 엉뚱한 사고였다. 사고 당시 “아, 출전 엔트리 1번으로 접수했는데”라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즉시 넘어지면서 다치지 않으려고 몸을 굴렸다. 다행히 속도가 높지 않았고 장비를 완벽하게 착용해 발목과 왼쪽 어깨를 다치는 걸로 몸은 수습됐다. 문제는 시합을 위해 연습하던 신형 GS를 더 이상 타지 못하게 된 것.

친한 형님께서 상황을 듣고는 전화를 했다. 자신이 모터사이클 대회에 나갔다가 다리가 부러진 터라 자신의 승합차에 신형 GS를 싣고는 내게 연습하라고 빌려주신 것. 주말 직전, 방송 편집을 마치자마자 라이딩 기어만 들고 대전역에 내렸다. 그렇게 챔피언이 탔던 GS를 끌고 대회장이 될 목계 나루터에 가서 밤을 새고 연습했다. 미리 월요일에는 휴가를 냈으니 편한 마음으로 계속 타고 또 탔다. 나루터의 흙을 느끼고 모터사이클에 착 붙는 기운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계속 있었다.

GS트로피가 열린 코스의 풍경. 사진 최민관 기자
GS트로피가 열린 코스의 풍경. 사진 최민관 기자

모터사이클과 자동차를 빌려주신 형님 덕분에 서울 오가는 여정도 편했다. 대회 출전 1주일 내내 화도교 하천부지에 가서 코스를 직접 그려놓고 연습에 매진했다. 탈진할 때까지 타고 출근한 뒤 일이 끝나면 다시금 연습이다. 물론 웨이트 트레이닝은 계속 병행했다. 대회 직전에 나도 모르게 확신이 들었다. 2년 전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됐음을! “이제는 땀이 흐르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의식하지 않는다.”

대회 전날인 금요일 저녁, 목계 나루터에 도착했다. 함께 도전한 친구(그는 3등이 됐다)와 만나 주문을 외웠다. “내일 이곳에 해가 뜨면 내가 뭔가를 보여줄 거다.” 나를 아는 이들에게 인정 받는 건 정말 큰 쾌감이 아닐 수 없다.

적당한 긴장은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비결이다.
적당한 긴장은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비결이다.

스포츠 트레이너로써 연수를 받을 때 느낀 사실인데 경기를 앞두고 적당한 긴장은 좋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벼운 스트레칭을 자주 해주면 괜찮다. 수년 동안 꾸준한 근력과 폭발적인 힘을 내면서도 근육 크기는 키우지 않으려고 언제나 몸을 만들었던 터다. 나름대로 전략을 짰다. “바이크를 70미터 밀고, 나머지 30미터는 뛰자.” 대회 열흘 전 당했던 부상 후유증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진통제를 먹었더니 컨디션이 무척 좋았다. 한 바퀴 다시 돌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집중한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집중한다.

예선은 1번이어서 긴장할 여유가 없었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진행했다. 체력 테스트 분위기를 보니 내가 1등으로 가겠다는 편안한 마음마저 생겨났다. 결승은 상황이 달랐다. 무려 11번째 출발이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었다.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출전을 준비했다. 집중했다. 긴장이 풀리는 걸 막기 위해.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다들 힘들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기회다” 의도적으로 적당히 긴장을 유지했다.

강인한 체력은 GS트로피의 기본이다. 구멍 뚫린 물통을 들고 전력 질주하기.
강인한 체력은 GS트로피의 기본이다. 구멍 뚫린 물통을 들고 전력 질주하기.

2인 1조로 출발해 물을 길어온 뒤 톱으로 통나무를 자르는 체력 테스트에서 함께 뛰는 선수와 “무조건 달려보자”고 논의했다. 체력에 자신 있었던 젊은 라이벌의 자신감을 향해 웃으며 단언했다. “너는 절대로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 분명 바로 꼬리 내릴 거다.” 생각대로였다. 달음박질하고 톱질을 끝내는 순간 다시 뛰어도 충분할 정도였으니. 스피드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미지 트레이닝의 결과가 그대로 현실이 되는 순간이 정말 짜릿했다.

통나무 사이를 지그재그로 건너야 한다.
통나무 사이를 지그재그로 건너야 한다.

드디어 스킬 챌린지다. 한참을 기다리며 선수들을 지켜보니 섬세한 느낌마저 보인다. 예선에서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지만 묘하게 결승에서는 안타깝고 아쉽고 하는 감정이 마구 뒤섞였다. 신기한 일이다. 참가 선수인 내가 관찰자의 시선을 생겨나다니. 겨우 2~3 코스를 지났는데 체력이 고갈된 선수들도 있었다. “실점을 최소화하고 얻을 수 있는 점수는 무조건 획득하라”고 동료들에게 전언했다.

아스팔트와 흙길을 가리지 않는 R1200 GS.
아스팔트와 흙길을 가리지 않는 R1200 GS.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출발 직전 다짐한다. “무조건 1등이 된다”는 마음. 지금 보면 예선이 시작됐던 첫날의 기억은 백지상태지만, 결승은 마치 파노라마처럼 모두 기억이 나는 게 무척 신기하다. 진입하면서 까다로웠던 첫 과제인 굴절 협로를 완벽하게 통과했을 때 “아, 정말 끝났구나”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 때부터였다. 즐겼다. 1등도, 속도도, 나머지 미션도 모두 잊고 그냥 순간을 즐겼다. “완벽하게 준비하면 경기를 즐기게 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통나무 언덕에서 걸렸는데 ‘무리해서 빠져나갈까’ 순간 고민하다, 이내 더 즐겁게 놀자고 다짐하고 바이크에서 내려 힘으로 GS를 굴려서 꺼냈다. 그게 정말 짜릿한 재미다. “4,000만원 짜리 바이크를 어떻게 마구 굴릴 수가 있나? 대회 경주차니까 가능한 거지.” 그게 바로 45도 통나무 경사로에서 느낀 쾌락이자 재미다.

GS 트로피 2018 국가대표 선발전 승자들. 좌로부터 김선호, 권혁용, 최동훈 선수.
GS 트로피 2018 국가대표 선발전 승자들. 좌로부터 김선호, 권혁용, 최동훈 선수.

마지막 코스가 끝났다. 가장 어려웠던 구간? 없다. 무척 즐거웠다. 이번에 함께 순위에 오른 친구들은 피지컬이 무척 좋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함께 협업할 생각이다. 사실 내 직업인 영상기자는 협업을 해야만 하는 일의 연속이다. 오디오 맨, 취재 기자, 운전 기사, 카메라 기자가 함께 팀을 이룬다. 마찬가지로 지난 대회 때의 나처럼 이번에 아쉽게 4등을 했던 친구 또한 모두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다. 1회 GS트로피에 참가했던 라이더들은 형제처럼 지낸다. 우리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더 넓게 본다면 전 세계에 그런 형제들이 100명이 생겨나는 것 아닌가?

권혁용 선수가 우승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권혁용 선수가 우승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2년 전 아내에게 “나의 50대는 세계를 향한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그 출발을 GS트로피로 삼았다. 내년이면 나는 마흔하고도 중반을 넘는다. 50대에 세계를 ‘투어’하기 위한 전초전, GS트로피 진출로 꿈의 첫발은 성공한 셈이다. 나는 방송 촬영을 하며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남미, 아프리카, 브라질, 우루과이, 북유럽, 미국, 캐나다까지 숱하게 다녔다. 그러나 그건 다 일이었다. 기억에 남는 건 11살 딸아이와 갔던 일본 큐슈 여행뿐이다. 일이 아닌 여행으로 티벳이나 라다크 같은 곳을 가고 싶다. 분명 난 가게 되겠지.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꿈꾸는 자에게 기회는 온다. 사진 권혁용 제공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꿈꾸는 자에게 기회는 온다. 사진 권혁용 제공

다시 꿈 이야기다. 다들 꿈을 갖고 있을 거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꿈이란 걸 얘기하려면 최소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이룰 수 없으니 쉽게 포기하면서도 꿈이라고 얘기한다? 그렇지 않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별을 따는 게 꿈이라면 산에 집을 짓고 사다리 걸고 굴뚝에라도 올라 별을 바라보기라도 해야지!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나보다 더 땀을 흘린 사람이 있다면 트로피를 가져가도 좋다”고 말이다.

쏟아지는 별 아래 꿈을 노래하는 풍경.
쏟아지는 별 아래 꿈을 노래하는 풍경.

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꿈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화시켜 뭔가를 해내라”고. “그렇게 세 번 이상 도전해도 안 된다면 그건 별일 뿐이라고, 노력도 없이 함부로 꿈을 말하지 말라”고. 난 도끼가 빠져 산신령이 나와 소원 세 가지를 들어준다면 당장 급한 소원 하나, 행복하게 사는 소원 하나, 마지막으로 소원을 말하는 기회를 한 번만 더 달라고 말하겠다. 준비하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고 성취하고, 다시 도전하는 것! 그것이 인생 아니던가!

권혁용 선수는 말한다. “나보다 더 땀을 흘린 사람이 있다면 트로피를 가져가도 좋다”고.
권혁용 선수는 말한다. “나보다 더 땀을 흘린 사람이 있다면 트로피를 가져가도 좋다”고.

“민주화되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바랐던 시절도 있었다. 암울했던 ‘빅 피처’에 절망하기보다는 내가 땀을 흘릴 수 있는 구체적인 동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능한 촬영 기자, 훌륭한 인격을 갖춘 직업인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불의의 세상이 가로막았을 때, 기회조차 박탈당했을 때 보상처럼 입문했던 모터사이클에의 도전이 시간이 흐를수록 마치 ‘결기’처럼 느껴졌던 건 하나의 목표가 뚜렷하게 생겨났기 때문이다.

대회 전날 텐트에 앉아 “심사관들이 이번에는 영어로 뭘 물어볼까” 생각해봤다. 준비조차 없었던 2년 전 대회와는 달랐다. 미리 휴대폰에 썼다. 상징적인 얘기들, 연속되는 인생에 대하여!

면접관이 물었다.

“자신을 소개해봐라. GS트로피가 무엇인가? GS가 의미하는 것이 뭘까”

“알다시피 두 번째 도전이다. 2년 전 GS트로피는 밤 하늘에 빛나는 별이었다. 너무 높이 있었고 가지긴커녕 만질 수조차 없었다. 그저 결과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나는 매일 2시간 이상 GS로 단련해왔다. 라이딩 기술은 일취월장했고 체력은 자격증을 따는 결과로 입증했다. GS? 당신도 알 거다. ‘겔렌데 스트라세(Gelande Strasse),’ 땅이 있고 도로가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GS는 ‘인생’이다. GS 트로피는 ‘인생의 연속’이다. 이제 별이 내 손 끝에 닿은 느낌이 든다. 나는 이제 사다리의 마지막 한 칸에 오른다. 내일이 되면 몽골에 가서 은하수를 쓸어 담겠다.”

편집 최민관 기자 edit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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