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즈난(Poznan)은 폴란드 서부의 역사ㆍ상업도시다.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주교로 봉직했던 폴란드 최고(最古)의 대성당이 있고, 한자동맹의 도시로 동유럽 무역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18~19세기 유럽 전쟁 와중에 프로이센에 병합됐다가 바르샤바 공국에 포함되기도 했고, 제1차 대전 후 독립과 함께 폴란드에 속하게 됐다. 2차 대전 때는 6년간 나치 치하에 있었고, 대전 후에는 폴란드인민공화국의 도시로 사실상 소비에트의 지배를 받았다.
1956년 6월 28일 새벽 포즈난의 세기엘스키(Cegielski, 당시에는 스탈린) 철강공장 노동자 수천 명이 파업 봉기를 시작했다.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와 유화노선에 고무되기도 했지만, 공화국의 살인적 물가와 세금, 열악한 노동 여건을 견디다 못해 시작한 항쟁이었다. 거기 폴란드 자유주의 지식인과 학생, 시민이 가세했다. 항쟁 대열은 금세 10만 명으로 불어났고, 중앙광장에 면한 국가보안위 청사와 경찰서 등 주요 관공서를 습격, 200여 명이 무기를 들었다.
앞서 노동자 대표단은 실권 없는 시위원회와의 협상에 지쳐 23일 수도 바르샤바 인민위원회 당국자들과 면담했다. 몇 가지 개선 약속을 받아 26일 포즈난으로 돌아온 직후 인민위원회는 말을 바꿨다. 그 결과가 포즈난 봉기였다. 조국 독립과 탈소비에트 등 구호가 없지 않았지만, 항쟁의 주력이던 노동자들은 ‘인터내셔널가’를 불렀고, 시종 독립이 아닌 빵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인민위원회는 탱크 400대를 앞세운 1만여 명의 군대로 사흘 만에 봉기를 진압했다. 시민 57명이 숨지고 600여 명이 부상 당했고, 수천 명이 연행됐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항쟁이 시작된 건 그 해 10월 23일이었다.
포즈난 항쟁으로 폴란드 집권 통일노동당 서기장에 개혁파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Wladyslaw Gomulka)가 취임했다. 그는 노동자 처우 개선과 주요 식료품 가격 동결을 단행했다. 고무우카는 56년과 유사한 환경에서 벌어진 70년 항쟁으로 실각했다. 그 와중에 탄생한 게 연대자유노조 ‘솔리다르노시치’였다. 2006년 폴란드 의회는 6월 28일을 국가공휴일인 ‘포즈난전사자추도일’로 정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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