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27일 미국 거대 정보기술(IT) 업체 구글에 불공정 거래 혐의로 과징금 24억2,000만유로(3조948억원)를 부과했다. 2009년 EU가 미 반도체회사 인텔에 매긴 10억6,000만유로를 두 배 이상 뛰어 넘는 사상 최대 규모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움직임에 맞서 EU가 미국 기업들에 벌금 공세를 강화하면서 양측간 통상 마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구글이 온라인 검색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악용해 쇼핑 비교 서비스 등 자회사에 혜택을 줬다”고 밝혔다. 규제 당국은 과징금과 함께 미 캘리포니아주 소재 구글 본부에 90일 안에 개선 조치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구글 측이 해당 기간 개선안을 내놓지 않으면 모회사인 알파벳 일일 평균 매출액의 5%, 약 1,400만달러의 추가 벌금을 내야 한다.
EU는 2010년부터 구글이 상품 검색 시 자사 쇼핑서비스의 상품을 경쟁사보다 상단에 노출해 공정한 경쟁을 저해했다고 보고 조사해 왔다. 구글은 유럽 온라인 검색 시장에서 9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한 절대 강자이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구글은 다른 회사들의 경쟁 기회와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박탈했다”고 설명했다.
EU는 최근 미국 기업들을 겨냥해 규제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유럽본부가 있는 아일랜드 정부에 법인세를 제대로 납부하지 않았다며 애플에 130억유로를 내라고 명령했고, 지난달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업 페이스북은 2014년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허위 정보를 제공해 1억1,000만유로의 벌금을 물게 됐다. EU는 구글을 상대로도 광고서비스와 스마트폰 운영체제(OS) 문제 등 반독점 행위 2건을 별도로 조사하고 있다.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와 온라인서점 아마존, 패스트푸드 업체 맥도날드 등 다른 유명 미국 업체들도 EU의 조사대상 목록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 측은 즉각 제소 입장을 밝혔다. 켄트 워커 구글 선임 부사장은 이날 “우리는 (EU)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법원 제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송이 유럽사법재판소로 넘어가면 확정 판결까지 수년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영국 BBC방송은 “수십년 동안 이어진 EU와 미국 IT 공룡들 싸움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양측간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상대의 힘을 견제하기 위한 더 강한 조치가 시행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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