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화한 마약 매춘 폭력, 영화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탈출구 없는 1950년대 뉴욕의 비주류 인생을 우울하게 그린다. 감미롭고도 애잔한 주제곡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뉴요커들의 암울한 현실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맨해튼에서 윌리엄스버그다리를 건널 때만해도 내심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이 도시의 어두운 그림자를 찾아내고 말리라 오기를 부렸는지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는 영화다. 그것도 흑백영화처럼 아주 오래된 잔상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윌리엄스버그 지역의 낮은 상가 담벼락에는 여전히 비합법의 상징인 그래피티가 장식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음산하지도 괴기스럽지도 않았다. 더러는 깔끔하고 고급스런 디자인 같기도 하다. 맨해튼의 고가 임대료에 밀려난 가게들이 속속 자리잡은 거리는 조용하지만 여유가 넘쳤다. 요즘 뜨고 있다는 한 카페에 들어갔다. 넓은 유리창으로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홀에서 젊은이들은 각자 노트북 컴퓨터를 켜놓고 오후의 한때를 즐기고 있었다. 영화 속의 어두운 그림자는 찾을 수 없었다.
“브루클린을 범죄의 소굴로 기억하는 건 공평하지 못하다. 1980년대 이후 서서히 변화를 맞이한 브루클린의 하안 지역은 오늘날 뉴욕 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지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2010년대 이후로는 하이테크를 이용한 첨단 기업들의 창업 장소이자, 현대 예술 및 디자인의 요람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박용민, ‘영화, 뉴욕을 찍다’, 헤이북스) 뉴욕에서 5년 반 동안 근무한 현직 외교관의 평가다.
특히 덤보 지역은 MBC 예능 ‘무한도전’에 소개되면서 한국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사무실이나 물류창고였을 법한 7~8층 규모의 견고한 붉은 벽돌 건물 사이로 맨해튼다리 교각이 걸리는 지점이 바로 기념사진 포인트다. 덤보(Dumbo,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는 맨해튼다리 아래쪽이라는 의미다. 제조업이 발달한 1890년대에 완공한 이 지역 건물은 창문만 바꿨을 뿐, 외관은 당시 그대로다. 선로 흔적이 남은 길을 따라 강변으로 나가면 좌우로 브루클린다리와 맨해튼다리가 부챗살처럼 펼쳐지고, 그 사이 작은 공원에서 시민들이 자리를 깔고 볕을 쬐거나 한가로이 책을 읽은 모습이 이 지역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이스트강(맨해튼 서쪽을 흐르는 허드슨강과 달리 동쪽 이스트강의 남북 끝은 바다로 연결돼 있어 실제로는 강이 아니다) 너머로 맨해튼 남단의 고층빌딩이 하늘을 찌르고 있어, 이를 배경으로 해넘이를 감상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물론 해질녘 브루클린다리를 직접 걸어서 맨해튼으로 들어가면 더욱 좋다. 교량 바깥쪽에 보행로를 둔 일반적인 구조와 달리, 브루클린다리는 차량이 다니는 도로 중간에 걷기 길을 만들었다. 자동차길보다 높은 위치여서 소음은 덜하고 전망은 시원해 평시에도 수많은 시민과 관광객으로 붐빈다. 서울에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20개도 넘지만, 걸어서 건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러운 일이다.
2개의 견고한 화강암 타워로 연결된 브루클린다리는 가장 오래된 현수교이자, 완공 후 몇 년 동안은 서반구에서 가장 큰 구조물이었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부를 정도로 기념비적 건축물이었던 만큼 건설과정에 대한 뒷얘기도 유명하다.
최초 설계자인 아우구스투스 뢰블링은 공사 착공 직전인 1869년 측량을 마무리하던 중 보트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해 파상풍으로 숨진다.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아 강바닥 기초공사를 진행하던 아들 워싱턴은 잠수병으로 신체 일부가 마비되는 불운을 겪었다. 수중 공사용 잠함(潛函)인 통나무로 만든 케이슨을 타고 강바닥 암반을 제거하는 공사에 투입된 100여명의 노동자들도 워싱턴처럼 질병을 얻거나 사망했다(수중에서 천천히 올라오거나 감압과정을 거치면 잠수병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은 20세기에 이르러 알려졌다.)
결국 마무리 공사는 워싱턴의 아내 에밀리가 맡았고, 1883년 5월 24일 열린 개통식에서 그녀는 승리의 상징인 수탉을 안고 맨 먼저 자동차로 다리를 건너는 주인공이 됐다. 그날 15만명(어떤 자료는 25만명)의 시민들이 걸어서 이 다리를 건넜고, 이에 힘입어 1898년 브루클린도 뉴욕의 한 지역으로 편입됐다. 완공 이듬해에는 서커스단 설립자인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이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21마리의 코끼리를 앞장세웠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브루클린다리는 전체 길이 1,825m로 빨리 걸으면 20분에 건널 수 있지만, 보통 40분 정도 잡는다. 길은 보행자와 자전거 통로로 구분돼 있는데, 도로 상부 철골구조물과 높이가 비슷해 바로 아래로 차량이 달리는 모습도 보인다. 나무판자를 깔아놓은 보행로는 첫번째 타워까지 완만한 경사다. 그래서 처음엔 맨해튼 마천루가 꼭대기만 보이다가 차츰 전체 모습을 드러낸다.
일몰 풍경은 날씨가 중요한 변수인데, 다리를 걷는 날 저녁에는 하필 비가 내렸다. 기대를 낮췄기 때문일까. 맨해튼의 화려한 불빛과 어우러진 분홍빛 구름이 아쉬움을 보상하고 남았다. 번들거리는 바닥에 비친 행인의 그림자엔 언뜻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우울함이 스치기도 했다. 그러나 대세는 ‘로맨틱 브릿지’다. 시야를 가린다고 생각했던 현수교 쇠줄은 수많은 마름모꼴 창이 되었고, 다리 위에는 그보다 더 다채로운 사랑이 무르익고 있었다. 무심히 오가는 행인들 사이로, 몸을 붙이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젊은 연인들에게 ‘맨해튼으로 가는’ 브루클린다리는 너무 짧아 보였다.
뉴욕=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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