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정훈./사진=이호형 기자.
[한국스포츠경제 박종민] 왕정훈(22ㆍCSE)에게는 '노마드(Nomad) 골퍼'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노마드'는 유목민의 라틴어다. 왕정훈은 국가대표를 거치는, 소위 말해 골프 선수로서의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했다.
2016시즌 유럽프로골프(EPGA) 투어 신인왕이자 통산 3승에 빛나는 왕정훈으로부터 힘겨웠던 지난 세월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최근 본지와 만난 그는 필리핀 골프 유학 시절 얘기를 꺼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필리핀으로 갔다던 왕정훈은 "2년 정도 있었다. 첫 1년은 치고 올라가는 시기라 문제가 없었는데 그 뒤엔 많이 서러웠다. 성적이 좋아지니깐 심한 견제를 당했다"고 운을 뗐다.
중학생 땐 대한골프협회(KGA)로부터 자격정지 4년의 중징계를 받았다. 중학교 3학년의 나이에 1학년 대회에 출전한 게 화근이 됐다. 2년을 유급했던 탓이다. 왕정훈은 "국가대표나 국가대표 상비군을 하고 싶었다. 자격정지로 인해 그런 걸 할 수 없게 돼 아쉽긴 했다"고 회상했다.
왕정훈은 "그래도 결과적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로 인해 동기부여가 됐고 빨리 프로에 입문하게 됐다"며 "나이제한이 없는 중국프로골프(CPGA) 투어를 거쳐 아시안 투어, 유럽 투어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다"고 말했다.
수식어 '노마드 골퍼'에 대한 생각을 묻자 왕정훈은 "색다른 수식어라 괜찮다"며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는 것 같다"고 밝게 웃었다.
왕정훈은 시련이 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고민하며 돌파구를 찾아냈다. 그는 한때 퍼트 난조로 마음고생을 했다. 이런 저런 변화를 시도하던 그는 마침내 '집게 그립'이라는 해법을 발견했다. 왕정훈은 "퍼트가 너무 안 되던 때가 있었다. 입스가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택한 게 집게 그립이었다"며 "어떤 선수가 하고 있었는데 사실 처음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런 저런 방법이 다 안 먹히다 보니 그 선수를 한번 따라 해봤고 그러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다. 이후 자신감이 생겨 계속 집게 그립을 했다"고 밝혔다. 왕정훈은 지난 해 초 집게 그립으로 갈아탄 뒤 3승을 올렸다.
지난 해 열린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역시 왕정훈에겐 빼놓을 수 없는 성장의 시간이었다. 왕정훈은 "112년 전에 열리긴 했지만, 현대 골프사에선 첫 번째 올림픽 골프나 다름없다. 그런 대회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했다는 게 너무 영광이었고 자랑스러웠다"며 "과거 있었던 국가대표에 대한 갈증이 해소됐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메달권에 들진 못했지만, 정말 재미있는 한 주였다. 일반 투어 대회와는 다른 배움을 얻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왕정훈은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도 염두에 두고 있느냐'는 물음에 "당연하다. 나가고 싶다.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왕정훈은 안병훈(26ㆍCJ대한통운)과 함께 리우 올림픽에 출전했다. 왕정훈과 안병훈, 김시우(22ㆍCJ대한통운)는 한국 남자골프의 '영건'으로 꼽힌다. 왕정훈은 안병훈에 대해 "EPGA 메이저급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며 "(안)병훈이 형과는 서로 연락도 하고 라운딩도 한다"고 털어놨다. 동갑내기 김시우을 두고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제5의 메이저대회'라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다. 실력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고 높이 평가했다. 왕정훈은 "내가 자신 있는 건 쇼트 게임이다. 어프로치샷은 특히 강점이라 할 수 있다"고 어필하면서도 "병훈이 형과 시우는 모두 꾸준하고 훌륭한 선수들이다"고 했다.
왕정훈은 국내 대회 출전 계획에 대해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지만, 내심 투어의 발전을 바라는 눈치였다. 그는 "(안)병훈이형, (김)시우 등 해외에 진출한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하니깐 국내 투어 인기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대회 수도 많아지는 등 변화가 그런 것들이다. 국내 투어 발전에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올 시즌 1승을 거둔 왕정훈에게 목표를 묻자 "2승을 더 해서 총 3승을 하는 것이다"라는 답변이 나왔다. 그는 "실력이 되면 PGA에도 진출하고 싶지만, 아직은 유럽에서 우승을 추가하는 게 급선무다"고 덧붙였다. 왕정훈은 지금까지의 골프 인생에 관해 "100점 만점에 50점 미만"이라고 다소 박한 평가를 내렸다. 이는 이루고 싶은 일들이 많고 공을 쳐온 날들보다 쳐야 할 날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욕심이 많죠?"라고 웃어 보인 왕정훈은 최종 꿈을 두곤 "PGA 마스터스 우승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가장 전통 있고 규모가 큰 대회인 것 같다. 롤 모델도 '마스터스'하면 떠오르는 타이거 우즈(42ㆍ미국)다. 우즈의 포효하는 세리머니를 닮고 싶다. 마스터스에서 포효하게 된다면..."이라고 상상했다.
모교 한국체대 학사일정을 소화하러 지난 20일 일시 귀국했던 왕정훈은 24일 다시 프랑스로 향했다. 왕정훈은 29일부터 열리는 EPGA 프랑스 오픈에 출전해 시즌 2승째에 도전한다.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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