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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질혼 이유? “ 의사 아내 만나 맞벌이” 계산적 속내도

입력
2017.06.2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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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문직 중 의사ㆍ약사 동질혼

남자 28% 여자 44%로 가장 많아

대졸부부ㆍ고졸부부 유형 1ㆍ2위

고졸 남편과 대졸 아내 3위 ‘눈길’

#2

사랑만으로 살아남기 어렵고

사랑 없는 결혼도 견딜 수 없어

끼리끼리 동질혼 ‘합리적 선택’

학력, 직업, 소득 등이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동질혼은 고학력, 고소득 직종일수록 뚜렷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학력, 직업, 소득 등이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동질혼은 고학력, 고소득 직종일수록 뚜렷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제가 서울 강남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결혼해도 주거 환경이 바뀌는 건 원치 않거든요. 부모님 모두 교육자로 퇴직하셨는데, 연금과 재테크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계세요. 제 아내 될 사람도 어머니처럼 맞벌이를 할 수 있는 소신 있는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페이닥터로 일하는 의사 임준성(가명ㆍ37)씨는 맞벌이 하며 알콩달콩 살 수 있는 여의사를 배우자로 원한다. 일이 정신 없이 몰릴 때마다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의사 아내를 만나 개원하고 싶다는 욕심이 불쑥불쑥 솟아나곤 한다. “부부가 함께 벌면서 부모님처럼 도란도란 사는 모습을 꿈꿔요. 그러려면 아무래도 같은 직업인 배우자를 만나는 게 좋겠죠.”

의사ㆍ약사가 전문직 중 동질혼 가장 선호

학력과 직업, 소득, 재산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동질혼은 고학력ㆍ고소득 직종일수록 또렷한 양상을 보인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자유로운 연애 상대를 만나 관계를 지속하기엔 학업과 직무에 얽매여 있는 시간이 너무 긴 탓도 있다. 비단 의사, 변호사만이 아니다. 교수는 교수와 결혼하고, 기자도 기자와 결혼하며, 공무원도 공무원과 결혼하는 경우가 흔하다.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2014년 6월부터 2016년 5월까지 결혼이 성사된 회원 3,000명(1,500쌍)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동질혼 부부 중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직종은 일반사무직이었다. 남성은 32.1%, 여성은 44.1%가 같은 사무직과 결혼해 성혼 커플 중 가장 많은 총 188쌍의 사무직 부부가 배출됐다. 일반사무직의 범위가 넓고, 회원 수가 많은 것이 주요 원인이지만, 뚜렷한 동질혼 트렌드를 보여준다.

전문직 중에서 동질혼 경향이 가장 강한 직종은 의사 및 약사들이었다. 의사나 약사는 남녀 모두 의사나 약사와 가장 많이 결혼했다. 남성은 27.9%가, 여성은 40.4%가 같은 직종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 비율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성별간 차이가 난다. 의사나 약사인 남성은 2006년 23.6%에서 2016년 27.9%로 동질혼 비율이 증가한 반면 여성 의사ㆍ약사는 2006년 52.7%에서 2016년 40.4%로 그 비율이 감소했다. 듀오 관계자는 “요즘 고학력 전문직 여성 중에는 돈은 내가 충분히 버니 예술가 남편을 만나고 싶다는 분들도 있고, 외모를 중시한다는 분들도 있죠. 동질혼이 강력한 추세이긴 하지만, 여성들의 선호는 다양해지고 있어요. 고소득 여성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라고 말했다.

남성, 동질혼에 눈뜨다

통계청이 지난해 말 처음 작성한 ‘2015 신혼부부 통계’는 대졸자는 대졸자끼리, 고졸자는 고졸자끼리 결혼하는 동질혼 경향을 보여준다. 대졸자가 많아진 만큼 대졸 부부가 53.9%(2011~2015년 평균)로 가장 많았고, 고졸 부부가 11.3%로 그 뒤를 이었다. 특이한 것은 세 번째로 많았던 부부 유형인데, 대졸 남편과 고졸 아내가 더 많을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고졸 남편과 대졸 아내가 전체 신혼부부의 10.3%로 3순위를 차지했다. 이 비중은 2011년 9.8에서 2015년 10.6%로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였다. 대졸 남편과 고졸 아내의 비중은 8.5%에 불과했다.

대졸 아내와 고졸 남편의 부부 유형이 대졸 남편과 고졸 아내보다 더 많다는 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학력이라는 결혼 조건의 영향을 덜 받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혼인통계를 담당하는 통계청 인구동향과 오경조 주무관은 “수치 차이가 큰 것은 아니지만 통상 아내보다 남편의 학력이 더 높다는 사회적 통념이 깨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집을 소유한 15년차 회사원 김모(41ㆍ여)씨는 “나이 들수록 결혼하는 데 중요한 건 조건보다 성격이나 취미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고졸이어도 마음만 맞으면 결혼하는 데 아무 관계 없다”고 말했다. “내가 먹고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데, 그런 조건이 무슨 의미인가 싶어요. 남들 시선 의식하는 거지. 전 외롭고 심심할 때 같이 취미 즐기고 대화할 수 있는 그런 파트너십을 원하지, 남들이 보는 화려한 결혼 같은 거엔 더 이상 관심이 없어요.”

전통적으로 한국 남성들이 배우자를 고르는 데 중요한 조건으로 여겼던 현모양처형 외모나 성격, 가치관 등은 ‘맞벌이 필수’에 밀려난 지 오래다. 동종업계 종사자와 결혼한 회사원 정모(42)씨는 아이를 낳고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퇴사하겠다는 아내와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맞벌이를 생각했고, 제가 생각하는 미래의 ‘스위트 홈’은 언제나 일하는 아내와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이었어요. 아내는 퇴사를 막는 저를 원망했지만, 저한테만 부양의 짐을 지우는 아내가 오히려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섭섭하더라고요.”

학력보다 재산, 박사보다 빌딩

고졸 남편과 대졸 아내가 그 반대 경우보다 더 많다는 것을, 여성이 더 조건 안 따지는 결혼을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학력 외에도 다양한 다른 조건은 많기 때문이다. 볼 때마다 감동적인 바른 품성, 쉴 새 없이 웃게 하는 탁월한 유머감각이 학력 조건을 상쇄할 수도 있다. 연예인을 방불케 하는 빼어난 외모나 시댁이 건물주인 막강한 재력일 수도 있다. 특히 소득과 재산이 학력의 차이를 얼마든지 상쇄할 수 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서울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양모(38ㆍ여)씨는 건축업을 하는 집안의 장남과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학력은 전문대 중퇴로 자신보다 낮았지만, 사람이 착하고 가업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양씨는 친구들 모임에 가면 결혼을 가장 잘한 친구로 꼽히며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이미 작은 건물 하나가 부부 명의로 돼 있어 임대소득까지 올리고 있다. “박사와 결혼한 친구, 대기업 직원과 결혼한 친구, 다양하죠. 그런데 사는 건 다들 팍팍한 것 같더라고요.”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육아에만 집중하고 있는 양씨는 본인의 선택에 “아주 만족한다”고 말했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인 시대다. 높아진 취업 연령과 주거비용 등으로 결혼이라는 것 자체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1인가구의 급격한 증가와 역대 최저치의 혼인율은 웨딩산업의 쇠퇴를 불러왔다. 하지만 결혼정보회사의 회원 수는 급격히 증가하는 중이다. 결혼 자체는 덜 하지만, 이왕 하는 결혼이라면 정확한 조건과 정보에 기반해 하겠다는 것이다. 듀오의 현재 회원 수는 3만3,000여명으로 10년 전 1만6,800명에 비해 두 배 정도 늘었다.

“회원들이 만나서 결혼에 이르기까지 평균 연애기간이 10.8개월이에요. 각자의 선호 조건이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조건만 맞아서는 결혼이 성사되지 않아요.” 듀오 관계자는 “조건이 맞는 상대를 만난 후 연애감정이 생겨나야 결혼이 가능한 것”이라며 “조건이냐 사랑이냐가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동질혼의 강력한 부상은 미혼 남녀들이 격차연애에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결의이기도 하다. 이 정글 같은 대한민국에서 사랑만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랑 없는 결혼도 견딜 수 없다. 조건 맞는 사람들끼리 사랑하고 결혼하겠다는 동질혼은 이렇게 이들에게 가장 합리적이고 현명한 선택이 된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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