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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신격호 시대’ 70년 만에 막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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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신격호 시대’ 70년 만에 막 내려

입력
2017.06.2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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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 신격호, 껌 회사로 시작해 ‘롯데 신화’ 일궈

두 아들 ‘골육상쟁’으로 말년 고초

마지막 남은 롯데알미늄 이사직도 8월 물러날 듯

신격호(휠체어에 앉은 이)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지난 5월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방문, 스카이서울(전망대)에서 관계자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롯데월드타워 건설은 신 총괄회장이 평생 ‘숙원’으로 지은 국내 최고층 빌딩이다. 뉴시스
신격호(휠체어에 앉은 이)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지난 5월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방문, 스카이서울(전망대)에서 관계자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롯데월드타워 건설은 신 총괄회장이 평생 ‘숙원’으로 지은 국내 최고층 빌딩이다. 뉴시스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95) 총괄회장이 24일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신격호 시대’가 막을 내렸다. 그가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8년 도쿄(東京)에서 롯데홀딩스의 전신인 ㈜롯데를 창업한 지 약 70년 만이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13개에 달하는 일본 롯데 계열사의 지주회사일 뿐 아니라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의 지분 19%를 보유한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롯데제과, 호텔롯데, 롯데쇼핑 등 주요 계열사 이사직에서 줄줄이 물러났고 현재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 중에서는 롯데알미늄 이사직만 유지하고 있다. 이마저도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8월에 물러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재일교포 사업가인 신 총괄회장은 1948년 도쿄에서 껌 회사인 ㈜롯데를 창업하면서 ‘롯데 신화’의 막을 올렸다. 껌 장사로 기반을 다진 신 총괄회장의 롯데는 초콜릿(1963년), 캔디(1969년), 아이스크림(1972년), 비스킷(1976년) 등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일본 굴지의 종합 제과기업으로 입지를 굳혔다.

껌 회사로 탄생한 지 40년도 채 되지 않아 1980년대 중반 이미 롯데는 일본에서 롯데상사, 롯데부동산, 롯데전자공업, 프로야구단 롯데오리온즈(현 롯데마린스), 롯데리아 등을 거느린 재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에서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신 총괄회장은 고국으로 눈을 돌렸다. 1959년부터 한국에서 롯데와 롯데화학공업사를 세워 껌ㆍ캔디ㆍ비스킷ㆍ빵 등을 생산했고,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인 1967년 4월 자본금 3,000만원으로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롯데제과는 당시 국내 처음으로 멕시코 천연 치클을 사용한 고품질 껌을 선보여 대히트를 쳤고, 이후 왔다껌, 쥬시후레쉬, 스피아민트, 후레쉬민트 등이 ‘대박’ 행진을 거듭했다. 1972년 이후에는 빠다쿠키, 코코넛바, 하이호크랙커 등 다양한 비스킷 제품도 쏟아냈다.

한국에서의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신 총괄회장은 1974년과 1977년 칠성한미음료, 삼강산업을 각각 인수해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1973년에는 지하 3층, 지상 38층, 1,000여 객실 규모의 소공동 롯데호텔을 선보이면서 관광업에 진출했고, 1979년에는 소공동 롯데백화점을 개장하면서 유통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비슷한 시기 신 총괄회장은 평화건업사 인수(1978년ㆍ현 롯데건설), 호남석유화학 인수(1979년ㆍ현 롯데케미칼) 등을 통해 건설과 석유화학 분야에도 발을 뻗었다.

식품-관광-유통-건설-화학 등에 걸쳐 진용을 갖춘 롯데그룹은 1980년대 고속 성장기를 맞았고, 잇단 인수ㆍ합병(M&A)을 통해 오늘날 국내 재계 서열 5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4월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새로운 50년을 향한 희망의 불빛을 상징하는 '뉴롯데 램프'를 점등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4월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새로운 50년을 향한 희망의 불빛을 상징하는 '뉴롯데 램프'를 점등하고 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신격호 시대’는 2015년 7월 불거진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 경영권 분쟁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이사회에서 대표이사 부회장에 선임돼 한ㆍ일 롯데를 총괄하는 ‘원톱’ 자리에 오르자 형 신동주 전 부회장은 곧바로 부친을 앞세워 롯데홀딩스에서 신 회장을 해임하는 등 ‘쿠데타’를 시도했다.

자신의 의지건 아니건, 쿠데타에 동참한 신 총괄회장은 결국 이 사건으로 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전격 해임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이어진 신동주ㆍ동빈 형제간 경영권 다툼에서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고, 결국 이달 초 대법원에서 신 총괄회장에 대해 한정후견인을 지정하면서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롯데홀딩스 정기주총에 앞서 열린 이사회에서 임기가 만료된 신 총괄회장의 재선임안을 주총에 상정하지 않기로 한 것도 한국 대법원의 이런 결정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런 말년의 고초는 신 총괄회장이 자초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ㆍ일 롯데의 총수 자리에 올라 경영권을 장악하려면 롯데홀딩스 주주 가운데 가족(광윤사), 종업원지주회, 임원지주회ㆍ관계사 등 3개 주요 주주 중 적어도 두 곳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상황을 두 아들에게 유산처럼 남겨 어느 한쪽이 포기할 수 없는 ‘무한 경쟁’을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전후 70년대까지도 불모지였던 한국의 제과ㆍ관광ㆍ유통 부문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신 총괄회장의 업적은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면서도 “일에 대한 열정이 지나쳐 적절한 후계자 선정 시점을 놓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신동빈 회장은 이날 주총 표 대결에서 2015년 8월, 2016년 3월과 6월에 이어 또다시 신 전 부회장 측에 승리를 거두면서 한일 롯데그룹의 지배권을 한층 공고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미 ‘무한주총’을 통한 경영권 탈환 의지를 표방한 신 전 부회장은 이날 ‘주총 4연패’에도 경영권 복귀 시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롯데가(家)의 골육상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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