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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도대체 케이블카의 끝은 어디인가

입력
2017.06.2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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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법고시가 폐지되고 변호사 시험의 응시횟수를 제한하는 결정이 헌법재판소에서 확정된 바 있다. 인력 낭비 및 로스쿨 교육 효과 소멸 등이 결정의 이유였다. 이로 인해 억울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여기서 핵심은 끝없는 반복에 따른 사회적 소모를 방지한다는 데에 있다. 무슨 일이든 다 정도가 있다는 것, 무조건 주구장창 도전하는 것도 문제라는 상식이 채택된 것이다. 충분히 떨어졌으면 그만 둘 때를 스스로 깨닫고 새 출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양양군은 이런 지혜가 없는 모양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고집은 20년이 넘도록 실패하고서도 도무지 그만 둘 때를 알질 못한다. 그런데 스스로만 고생시키는 고시 장수생과는 달리, 양양군의 고집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다. 자연을 훼손한다는 동일한 이유로 매번 거절된 사업을 좀비처럼 회생시킴으로써 온 나라를 갈등과 소모적 논쟁의 도가니로 또 다시 몰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양양군이 낸 행정소송이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 인용됨에 따라 다시금 케이블카를 추진한다고 한다. ‘보존 및 관리에 치중한 나머지 문화 향유권 등 향유 측면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인용 이유이다. 이미 등산로까지 다 난 산이 케이블카라는 일종의 야외 엘리베이터까지 갖추지 않으면 인간의 문화향유 권리를 고려하지 않는 처사라는 논리의 어처구니없음만 갖고도 할 말은 많다. 문화향유라는 미명이 실은 자연을 볼모로 돈을 벌려는 지극히 상업적인 의도임을 두말할 나위 없다. 최근 감사원에서 발표한 공익감사 결과 추진과정 상에서 위법사항이 있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 복잡한 논의의 와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왈가왈부의 직접 당사자는 바로 자연이라는 점이다.

설악산이 천혜의 자연이 있는 곳임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 말의 의미는 한마디로 귀한 야생 동식물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이 수많은 생물 중 단 한 종에 불과한 산양만을 놓고도 본 사업의 부정적 영향은 심각하게 우려됐다. 케이블카 건설 대상지인 남설악 지역 오색-끝청 구간에 산양이 살고 활발한 섭식활동을 펼치는 것은 물론 번식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존 연구와 흔적조사, 그리고 무인카메라 자료로 명백히 밝혀졌다.

하지만 산양의 존재를 분명히 인정하고서도 케이블카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야말로 과학을 전혀 모르거나 무시하는 태도다. 우선 한국에 서식하는 특정 산양 종인 Naemorhedus caudatus가 케이블카라는 특정 인공요인에 어떠한 영향을 받는지, 딱 그런 연구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증거가 없다’라고 말할 순 없다. 원하는 대상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연구는 없어도, 분류학적으로 가까운 근연관계의 종에 대한 연구는 무척 많다. 산양과 매우 가까운 산악 유제류들이 인간의 활동 증가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사례는 무수히 보고되고 있다.

둘째, 케이블카가 이런 산악 유제류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거의 유일한 2015년도 폴란드 연구에서 케이블카 설치 후 집단크기가 감소하고 관찰되는 어린 개체수 줄어드는 등 부정적 영향이 발견되었다. 셋째, 인간의 활동이 야생동물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증명한 사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만약 산양이고 케이블카고 아무것도 모른다 하더라도, 기존의 연구를 감안한 과학적인 관점은 부정적인 영향의 가능성에 압도적인 무게를 싣는 쪽이다. 오히려 아무 영향이 없을 거라고 말하는 바로 그들이야말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야 하는 당사자임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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