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신중 환영 속 투스크 의장 등 “영국 유럽 잔류하는 대반전 있길”

영국에서 최소 5년간 거주한 유럽연합(EU)시민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후에도 영국 국민과 같은 권리를 보장 받을 전망이다. 이로서 지난 19일 시작된 브렉시트 협상의 첫 단추로 영국 내 EU시민의 권리와 EU 내 영국인 권리를 보장하는 ‘시민권’ 협상의 실마리가 풀리게 됐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2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영국에 5년 이상 거주한 EU시민을 가리키는 ‘영국에 정착한 상태’를 새롭게 규정하고 건강보험과 교육, 연금 등에 영국인과 동일한 혜택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메이 총리는 “영국에 거주하는 EU시민 중 누구도 갑작스런 위기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며 “영국은 EU시민 누구도 떠나지 않길 원하고 가족이 흩어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U는 영국의 ‘EU시민 권리 보장’ 선언을 조심스럽게 환영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협상의 좋은 시작점”이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는 감상을 밝혔다. 한 EU 고위관계자는 영국 BBC방송에 “구체적인 사항을 검토해 봐야 알 것”이라고 말했다.
EU는 그동안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으로 이주한 EU시민들의 권리를 기존과 동일한 수준으로 보장해 달라고 영국에 요구하며 이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제시했다. 사법관할 역시 유럽사법재판소(ECJ) 아래 두어 법적 권리도 보장하겠다고 주장했다. 다만 영국측은 EU시민이 ‘영국에 정착한 상태’라 하더라도 ECJ의 관할에 두기는 어렵다며 영국 법원이 대신 법률 보호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에는 약 320만명에 이르는 EU시민이 거주하고 있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행하면서 역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자 영국 내 거주하는 EU시민의 권리가 제한되거나 영국 정부가 대대적인 추방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브렉시트 협상이 공식적으로 시작됐지만 EU 지도자들은 브렉시트가 취소되는 ‘대반전’을 바란다며 실낱 같은 희망을 내비쳤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EU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며 존 레넌의 노래 ‘이매진’의 가사를 인용해 “날 공상가라 말하겠지만 난 혼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도 “모든 면에서 브렉시트가 싫다”면서 “가능하면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을 단일시장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는 영국과의 무역에 경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메이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이 6월 8일 총선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한 후 유럽에서는 ‘브렉시트 자체가 재검토 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가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장관은 19일 “우리는 떠난다”며 비장한 성명을 내고 브렉시트 협상에 돌입했다. 양측은 최종 브렉시트 시한(2019년 3월) 전 비준 동의 등 법적 절차를 마치기 위해 내년 10월을 협상 기한으로 보고 있으며, 양국 시민권 문제 외에도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 결별합의금 문제 등 여러 난제를 풀어야 한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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