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고 김규남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에 관한 수필을 기고했다가 1975년 반공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했던 한승헌(83) 변호사가 43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부장 이헌숙)는 1975년 한 변호사에게 적용된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한 변호사는 1972년 유럽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고 김규남 의원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여성동아’에 김 의원 죽음을 애도하는 ‘어떤 조사(弔辭)’라는 수필을 썼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국제엠네스티 한국 지부 이사를 당시 맡고 있던 한 변호사는 1심 재판에서 “사형 제도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수필체로 풀어 쓴 일반론적인 글일 뿐 특정인을 지칭한 것이 아니다”라고 항변했지만 그 때 사법부는 “반국가단체에 동조했다”며 1심에서 징역 1년 6월 실형을 선고했다. 2,3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 받고 풀려나기까지 한 변호사는 9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43년이 지나 열린 재심에서 재판부는 “한 변호사에 대한 조사가 위법하게 이뤄져 진술조서 등을 유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며 당시 검찰이 한 변호사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해 3일간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조사하고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했다. 또 “‘어떤 조사’를 살펴보면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사형을 당한 사람을 애도한다는 내용은 없고,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는 주장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형 당한 김 의원에 대해 지난 2015년 2월 대법원에서 재심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고도 덧붙였다.
당시 검찰은 중앙정보부가 영국 캠브리지대 박노수 교수와 김 의원을 불법 구금해 강압 수사를 벌여 얻은 자백을 바탕으로 간첩으로 기소, 법원의 사형 판결을 받아 냈다. 법원은 형 확정 2년 만인 1972년 이들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무죄 선고 직후 한 변호사는 “저처럼 정치탄압의 대상으로 억울하게 옥고를 치른 분들이 많은데 앞으로 어떤 독재 권력도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의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한 변호사는 동백림 간첩단 사건,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사건 등을 변론해 ‘시국사건 1호 변호사’로 불린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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