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토록 무관심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65세 이상 노인의 절반이 빈곤하고, 폐지를 주워야 생존이 가능한 나라에 살고 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9.6%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그렇다고 나머지 50.4% 노인의 형편이 나은 것도 아니다. 간신히 빈곤에서 벗어나 있을 뿐이다. 노인들의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노인들이 어떤 분들인가. 산업화의 기초를 놓았던 산업의 역군들이 아니신가. 노인세대의 땀과 헌신이 없었다면 한국의 산업화가 어떻게 가능했을 것이며, 세계에서 11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나라가 될 수 있었겠나.
배신의 역사도 이런 배신의 역사가 없다. 청춘을 다 바쳐 헌신했는데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절반이 빈곤한 세상이라니. 60~70년대 경제성장에 대해 한강의 기적 운운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는 사람들이 그 역사의 주역 중 절반이 빈곤한데도 침묵했다. 1인당 가처분소득이 4,778달러로 한국의 21.9%에 불과한 멕시코의 노인 빈곤율이 한국의 절반 수준인 27.0%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노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관심은 거의 방임 수준에 가깝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문재인 정부가 임기 중에 기초연금의 급여 수준을 30만원으로 높이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잘한 일이다. 하지만 30만원의 기초연금만 가지고는 노인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도,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도 없다. 기초연금의 급여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함께 높여야 하는 이유이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기초연금의 급여 수준을 높이는 것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둘 중 어느 하나만 가지고는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2028년까지 40%로 낮추는 것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40년 동안 기여금을 납부했을 경우에 적용되는 소득대체율이다. 현재 실질 소득대체율은 퇴직 전 생애 평균소득의 24%에 불과하고 수급자의 월평균 수급액은 32만원을 조금 넘는다. 1인 가구의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중산층이 국민연금만 믿고 노후를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낮은 소득대체율의 국민연금이 중산층에 민간보험을 구매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중산층이 민간보험을 통해 노후를 준비하게 되면 공적 복지에 대한 중산층의 지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고,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노후소득 보장제도로 전락할 수도 있다. 더욱이 중산층이 노후를 민간보험에 의존하고 있는 사회에서 제대로 된 복지국가가 만들어질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40년 가입자의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는 것은 너무나 필요한 일이다.
일부에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은 현 세대에만 좋은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세대 간 형평성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안정된 노후가 보장된 세대가 후세대에 물려줄 사회적 유산은 그렇지 못한 세대가 물려줄 유산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 사회가 복지국가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중산층의 지지는 필수적이고, 국민연금을 강화하는 것은 중산층이 복지국가를 지지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필요하다면 국민연금의 기여율을 높이고, 세금을 투입해 국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기여율을 높이고 증세하는 것이 두려워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40%로 묶어둘 수는 없다. 재원은 사회적 필요에 따라 마련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정치가 계속 노인빈곤 문제를 외면한다면 노인들이여, 태극기를 내려놓고 청장년들과 손잡고 광장에 함께 나오시라. 당신들이 땀 흘려 노력한 대가를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요구하라. 당신들은 그럴 권리가 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