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드라이아이스'를 ‘마른얼음’이라 부른다. ‘마르다’가 그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얼음’을 꾸미는 방식이 특이하다. ‘마른얼음’의 낱말 구성을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낯섦이 ‘dry ice’의 직역에서 비롯한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이러한 구성, 즉 ‘마르다’가 ‘물을 환기하는 말’을 꾸미는 구성의 낱말이 제법 많다. 이중엔 ‘마른빨래’나 ‘마른눈’처럼 ‘dry-cleaning’과 ‘dry-snow’을 직역한 낱말도 있지만, 영어 표현과 관련 없이 만들어진 낱말도 있다.
‘마른침을 삼키다’는 긴장하여 입안이 바짝 마른 상태에서 침을 힘들게 삼키는 상황을 나타낸다. ‘마른세수를 하다’는 물기 없는 손으로 얼굴을 문질러서 씻어 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몹시 긴장하거나 놀란 상황, 즉 식은땀을 흘리는 상황은 ‘마른땀을 흘리다’로도 쓴다. ‘마른침’ ‘마른세수’ ‘마른땀’ 등의 낱말을 보면 ‘침’ ‘세수’ ‘땀’ 등 ‘물을 환기하는 말’과 ‘마르다’를 결합하는 말 만들기가 우리말에서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두 말의 결합 방식이 의미상 독특하다 보니 이런 말들은 어지간히 익숙하지 않는 한 낯설게 느껴진다.
“강수량이 2000년에 이어 최저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도 마른장마가 예상된다”에서 ‘마른장마’는 ‘장마철인데도 비가 아주 적게 오거나 갠 날이 계속되는 기상 현상’을 가리킨다. ‘마른장마’라는 말이 낯선 사람이라도 그 말의 뜻은 쉽고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에겐 낯설 수 있는 말이 대중매체에서 널리 쓰이는 건 이 때문이다. 장마철이 지나면 휴가철이다. 여름철 물놀이할 때는 ‘마른익사’에도 주의해야 한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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