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공세적으로
트럼프에 북핵 해법 제시할 듯
웜비어 사망에 美 여론 악화
대북정책 교감도 적어 난항 예고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핵 동결을 거쳐 비핵화를 달성하는 2단계 접근법을 강조한 것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일종의 승부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에 수세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와 달리, 공세적으로 북핵 해법을 제시해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가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다만 오토 웜비어 사망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악화한데다 한미간 대북 정책의 교감이 충분치 않은 상황이어서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제안이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내주 열릴 한미 정상회담 의제는 사실상 사드와 북핵으로 압축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환경영향평가 실시가 사드 연기나 철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사드 배치 지연에 대한 미국의 불만과 의구심을 푸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반면 북핵 문제에선 2단계 접근법을 제시하며 “정상회담에서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핵 동결은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막기 위한 조치다.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10개 안팎의 핵무기를 폐기하기에 앞서, 갈수록 고조되는 미래의 핵 위협과 핵 확산 가능성부터 차단하려는 것이다.
핵 동결은 트럼프 대통령도 굳이 마다할 리 없는 방안이다. 미 정부가 이미 대북 선제타격을 포함한 군사적 옵션을 배제한 상황에서, 비핵화를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핵 동결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미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마지막 카드로 남겨놓고 있어 미국도 급하기는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외교 자문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 회장도 전날 강연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우리가 바라는 것이지만, 비현실적 목표”라며 핵 동결 협상이 가능하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대북제재와 압박을 앞세운 미 정부의 방침에 적극 호응하고 있어 외견상으로 한미간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북정책의 간극은 상당하다. 무엇보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과정, 즉 협상의 문턱 자체가 다르다. 미 정부의 대북 원칙은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다.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강력한 압박을 통해 북한을 옭아매고 그로 인해 북한이 어쩔 수 없이 비핵화 대화에 나서도록 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2012년 북한과 핵 동결을 포함한 내용의 2ㆍ29합의를 맺었지만, 장거리미사일 발사로 한 달여 만에 휴지조각이 된 뼈저린 기억도 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비핵화는 한미 공통의 목표이지만,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낼 것이냐를 놓고서는 입장 차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협상의 방법론을 논의하기엔 시기적으로도 좋지 않다. 북한에 억류됐던 웜비어가 사망해 북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입장에선 북한을 어떻게 압박할 것이냐를 논의해야 할 상황에서 북한과의 협상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한가한 소리로 비칠 소지도 있다.
결국 핵 동결을 통한 비핵화는 한미 정상회담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될 공산이 크다. 더구나 미 정부는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비롯해 한반도 문제를 다룰 실무진의 공백을 아직 채우지도 못한 상황이다. 외교 소식통은 “양측의 치열한 기 싸움은 그제서야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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