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1통 1만8000원, 4등분하면 2만원
마트, 편의점서 조각 과일ㆍ채소 인기
진열대엔 신기한 모양의 단면 늘어나
“자를수록 가치는 올라갑니다”
21일 오전 서울 성북구 원룸촌의 한 마트에서 점원이 수박 한 통을 4등분한 후 새 가격표를 붙였다. 잘린 수박 한 조각에 5,000원씩, 4조각을 사면 2만원이다. 원래의 수박 한 통 가격이 1만8,000원이므로 수박이 조각나면서 가격은 11% 비싸졌다. 그런데도 한 푼이 아쉬운 젊은 고객들 사이에서 조각 수박이 인기다.
점원은 “이 동네는 1인 가구가 많아서 수박을 통째로 사지 않는다. 이렇게 잘라서 팔아야 재고가 안 남고 이득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수박을 사러 온 대학생 김수연(22)씨는 “한 통을 사면 더 저렴하겠지만 다 먹지도 못할뿐더러 쓰레기 처리 비용 등을 따져볼 때 혼자 사는 사람에겐 조각 수박이 훨씬 이익”이라고 말했다. 날카로운 칼질로 수박의 단면이 늘어날수록 그 가치가 올라가는 현상, 1인 가구 시대의 새로운 단면이다.
수박뿐 아니라 조각 과일이나 조각 채소가 인기를 끌면서 신기한 모양의 단면들이 마트 여기저기에서 눈에 띈다. 반으로 잘린 배추의 단면은 판타지 속 거대한 숲 같고, 엄지 손가락만한 크기로 잘라 놓은 호박의 단면은 황무지를 드론으로 촬영해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보라색이 선명한 형이상학적 문양은 자색 양배추의 단면이다. 계란말이 용으로 잘게 잘라 포장한 양파와 당근, 한 컵에 담긴 파인애플, 사과, 키위도 저마다 개성 넘치는 민낯을 드러내고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잘라 팔고 낱개로 파는 동네슈퍼
성동구 마장동 대학가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모(55)씨에게 과일과 채소를 자르고 포장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어린 아이 머리통만한 양배추를 2등분하고 수박은 4분의 1 크기로 잘라 랩을 씌운다. 바나나와 사과, 파프리카는 한 개씩 포장하는데, 이씨는 과일 채소 매상의 대부분을 조각이나 낱개 포장으로 올리고 있다. 주 고객은 역시 대학생을 비롯해 혼자 사는 젊은이들이다. 이씨는 “15년 전부터 자취생들을 위해 대파를 다듬고 잘라 팔기 시작했다”며 “최근엔 대학생뿐 아니라 혼자 사는 직장인까지 많아지면서 작은 포장 제품 판매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에서도 소형포장 인기
식구(食口) 수가 줄고 소비 패턴이 변함에 따라 대용량, 대형 포장, 다량 묶음 일색이던 대형마트에서도 자르거나 조금씩 담아 파는 과일 채소가 잘 팔린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꼭지부분을 손질한 바나나 2개를 묶은 '간식용 바나나’의 6월 18일까지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7.6%나 증가했다. 양파, 마늘, 버섯을 소량으로 포장한 ‘하루 한끼’ 제품도 16.5% 늘었다. 파인애플, 사과, 키위 같은 과일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소형 용기에 담은 이마트의 '간편 과일'의 경우 올해 들어 6월까지 판매된 양이 지난해에 비해 26.5% 증가했다. 수박을 700g 정도로 잘라 포장해 판매하는 ‘나 혼자 수박’도 인기다.
통계청의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명으로 구성된 가구는 총 520만3000가구로 전체의 27.2%에 달한다. 2ㆍ3ㆍ4인 가구보다도 많다. 지난 1월 한국국토정보공사는 2030년엔 1인 가구 수가 전체의 33%인 724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더욱 확고해져 가는 1인 가구 시대, 더욱 많고 다양한 단면들이 마트 진열대를 채워가고 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박미소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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