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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노조, 일자리기금 조건 없이 낼 순 없었나

입력
2017.06.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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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현대기아차그룹 노조 대표들이 노사공동 일자리 연대기금을 조성할 것을 사측에 제안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현대기아차그룹 노조 대표들이 노사공동 일자리 연대기금을 조성할 것을 사측에 제안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제안은 꽤 파격적이라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돼요.”

지난 20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현대기아차그룹사 노조가 연 ‘일자리 연대기금’ 제안 기자회견을 며칠 앞두고 만난 민주노총 인사가 자신 있게 전한 말이다. 최근 민주노총 관계자들을 통해 국내 최대 규모 기업의 노조들이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위한 기금 마련에 나선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면서 내심 기대감을 가진 터였다. 이들이 ‘기득권 노조’라는 족쇄를 벗어내고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여겼다.

파격은 다르게 다가왔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본 일자리 연대기금 5,000억원(노사 각각 2,500억원)은 ‘경우의 수’ 투성이였다. 노조 측에서 기존 대법원 판례에 비춰 사측과의 통상임금 소송(상여금ㆍ휴가비 등의 포함 여부) 승리를 기대한다지만, 승소를 가정해 사측에게 지급해달라는 체불임금은 당장 일자리 연대기금의 재원으로 쓸 수 없는 ‘가상의 돈’이었다. 매년 적립한다는 200억원(노사 각각 100억원)도 임금의 일부가 아닌 경영성과라는 변수에 좌우되는 일시 성과금에서 나온다. 설령 사측이 교섭에 합의해도 실행을 위한 조합원 총회(전체 투표) 통과라는 변수도 있었다. 이 3차 방정식을 완벽히 풀어야만 5,000억원이 조성되며 최악의 경우 ‘제로’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결국 시작하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설득력이 부족한 제안에 사측은 즉각 반대했다. 현대차 소송은 2심까지 일부 승소 중이고 기아차는 1심을 기다리고 있어 굳이 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작 일자리 연대기금의 수혜를 입을 이들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이날 기아차 사내하청 업체의 한 노동자는 “기아차 사내하청 지회를 분리하고, 노조에 가입해 쫓겨난 현대차 비정규직을 외면해온 정규직 노조원들이 모금 방식도 불확실한 일자리 기금을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21일 금속노조는 논평을 통해 “일부 언론이 현대기아차그룹 본사의 대응전략을 그대로 받아쓴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하청업체들과의 상생을 원했다면 경우의 수가 필요 없는 임금의 일부 출연 또는 임금 동결을 통한 ‘조건 없는 지원’ 을 제안할 순 없었을까. 그 같은 대승적인 결정에 사측도 과연 옹졸함을 무릅쓰고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었을까. 아름다운 제안을 하고도 박수 받지 못한 이유를 노조 스스로 고민해 봐야 할 때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한국일보 정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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