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정진영] 황치열은 2007년 데뷔했다. 이름을 알리기까지 꼬박 8년 여가 걸렸다. 한국과 중국을 넘나드는 대형 가수가 되기까지 10년 여가 지나야 했다. 1, 2년도 힘들다는 무명 시절을 10여 년이나 견딘 황치열은 "근성은 치열"이라며 웃었다.
최근 새 앨범 '비 오디네리'를 발표한 황치열을 만났다. 마주 않은 테이블에는 직접 사인한 CD가 놓여 있었다. 황치열은 :재킷부터 구성까지 정말 신경을 많이 쓴 CD"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황치열은 2007년 2월 디지털 싱글 '치열'을 내고 데뷔해 그다지 큰 주목을 끌지 못 했다. 몇 개월 후인 6월 발매한 정규 1집 '오감'도 마찬가지였다. 남성 솔로 가수들의 활동이 뜸했던 시절, 황치열에겐 자신을 알릴 기회가 별로 없었다.
비로소 황치열이란 이름 석 자가 대중에게 각인된 건 2015년이다. 목소리를 숨긴 출연진 가운데 음치와 실력자를 가려내는 프로그램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출연하고 나서다. 출연진 가운데는 노래를 잘하는 실력자와 음치가 두루 섞여 있었고, 이 가운데 실력자로 출연한 황치열은 임재범을 꼭 빼 닮은 음색으로 주목 받았다. 이후 중국판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며 전성기가 열렸다. 중국에선 배우 이민호, 김수현 등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 스타가 됐고, 국내에도 꽤 단단한 팬덤이 생겼다.
황치열은 "처음 중국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을 땐 어안이 벙벙했다. 공항에 도착했는데 팬들이 많이 몰려 있는 걸 보고 뒤를 돌아봤다. 나 때문에 모인 사람들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팬들 덕에 꿈 같다는 게 뭔지 확실히 알게 됐다"는 황치열은 팬들에게 유독 각별한 스타로 통한다. 긴긴 무명 시절을 견디게 해 준 게 아버지였다면, 지금 그를 지탱하는 큰 축은 팬이다.
황치열은 "아버지가 위암이었다. 내가 가수가 되겠다고 하고 서울에 올라온 지 두 달 만에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인정받기 전이었다"며 "부모에게 떳떳한 아들이 되고 싶었다. 목표를 세운 다음에 그 목표를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되긴 싫었다. 그 때부터 잠을 줄이고 하루에 커피를 12잔씩 마셔가면서 열심히 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버텨온 시간들이 결국 현재의 황치열을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희망이 됐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쁘다는 황치열은 '비 오디네리'를 자신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일컬었다. 많은 관심과 성원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황치열은 "팬들의 맹목적인 사랑을 느낄 때마다 책임감과 의무감을 느낀다"며 "다른 건 몰라도 근성 하나는 자신 있다. 늘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하우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진영 기자 afreeca@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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