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격차가 한국사회 불평등의 핵심
사교육ㆍ공시 열풍 등 과도경쟁 유발
‘약탈 임금’을 ‘포용 임금’으로 바꿔야
임선재(34)씨는 지하철 스크린도어 유지ㆍ보수업체에서 일한다. 야간 작업까지 해야 월 190만원가량 번다. 승진도 승급도 없는 비정규직이다. 그에겐 4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가 있지만 지금 수입으로는 결혼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다. 그는 여의도 벚꽃축제 때 여자친구와 함께 결혼예복을 입고 ‘최저임금 1만원 인상’ 퍼포먼스를 했다. “한 달 월급으로 자취방 월세와 공과금, 생활비를 내다 보면 적금은커녕 돌아올 학자금대출 상환에 다시 대출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란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명제는 신전(神殿)의 어둠 속에서나 어울릴 법하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흙수저로 출발선이 다르다. 살면서 평가받는 인간의 가치도 인간다움 자체와는 거리가 멀다. 임금에 노동력 활동기간을 곱한 노동력의 가치일 뿐이다. 비용이고 상품이며 인적자원이다. 주류 경제학은 임금을 ‘생산성의 결과’로 본다. 임씨의 생산성은 야간 작업을 해도 월 200만원 가치가 안 되는 걸까.
장하성 교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다. 핵심은 임금 격차다. 모든 계층에서 노동소득이 전체 소득의 90%를 넘는다. 격차의 현실은 암울하다. 임금소득 상위 10%는 하위 10%보다 5배 넘게 받는다. 위에서 많이 가져가니 월 130만원도 못 버는 저임금 근로자가 4명 중 1명꼴이다. 같은 생산라인에서 동일 업무를 해도 비정규직 급여는 정규직의 절반이다.
반면 공공부문에 한 번 발을 담그면 종신 고용이 보장된다. 평균 연봉 9,000만원 이상 공공기관이 28개나 된다. 일은 편하고 연봉은 많으니 ‘신의 직장’으로 불린다. 공무원 급여도 적지 않다. 전체 근로소득자 상위 14% 수준이다. 풍족한 연금을 감안하면 신의 직장을 뛰어넘는다. 노조 과보호를 받는 정규직도 고용 안정과 고임금 혜택을 누린다.
북유럽 저임금 근로자는 20명 중 1명 꼴. 임금소득 상위 10%와 하위 10% 차이가 2배 수준이다. 대ㆍ중소기업은 물론, 직종별 임금 격차도 거의 없다. 스웨덴의 소방관 건설노동자 초임은 2만5,000크로나(한화 325만원) 선. 교육기간이 긴 치과의사 약사 초임(3만크로나ㆍ390만원)과 별 차이가 없다. 공무원 급여도 전체 근로자 평균 수준이다(<스웨덴 패러독스> 2011년 김영사).
왜 이런 차이가 날까. 북유럽은 사회적 합의로 임금을 결정한다. 직능별ㆍ업종별 노조와 경영자단체가 직무내용, 생산성 등을 합리적으로 따져 임금 수준을 정한다. 같은 직종이라면 기업 규모를 떠나 모든 근로자에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한다. 대ㆍ중소기업, 정규ㆍ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크지 않은 ‘포용 임금’이다.
한국은 해방 이후 줄곧 힘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임금 배분은 철저히 시장논리에 맡겨졌다. 말이 시장논리이지, 기실 힘의 논리다. 시장만능 경제에선 경쟁과 효율을 앞세워 사회적 약자에게 위험을 떠넘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중소기업이 영세기업을,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남자가 여자를, 대졸이 고졸의 임금을 빼앗아 가는 구조다. ‘약탈 임금’이다.
최저임금 1만원이 실현되면 청년노동자 임씨의 결혼 꿈도 이뤄질까. 그는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다. 힘있는 자들이 많이 가져가는 임금 배분구조의 왜곡 탓이다. 공공부문과 정규직 노조의 몫을 줄여야 한다. 지금도 최저임금 제도는 유명무실하다.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인 최저임금마저 못 받는 근로자가 280만명이다. 법을 지키자면 한계 상황에 몰린 영세사업자 상당수가 문을 닫아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의 상징성에 매달릴 게 아니라 임금 배분의 생태계 자체를 바꿔야 한다. 비합리적 임금 격차는 한국사회 치열한 경쟁과 갈등의 원인이다.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 임금과 근로조건이 천양지차로 벌어지니 죽기살기로 사교육과 스펙 쌓기,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 임금 배분의 형평성, 포용성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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