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맹장염으로 급히 병원을 찾은 A씨는 “수술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ㆍ에이즈) 환자라는 이유였다. 의사는 A씨에게 “여기서 수술을 하게 되면 물청소도 해야 하고 소독도 해야 해 복잡하고 번거롭다”며 “다니던 병원으로 가라”고 일방 통보했다.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지만 A씨는 결국 다른 병원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사단법인 장애여성공감이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국내 에이즈 환자 20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용역 조사결과, 4명 중 1명(26.4%)이 “감염 사실을 확인한 의료진으로부터 수술을 거부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21일 밝혔다. ‘의료기관에서 차별 받은 적 있다’는 응답자는 79.0%에 달했다. 의료인으로부터 ‘동성애 등 성 정체성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차별적 태도를 경험했다’고 답한 사람은 21.6%, 진료와 관련 없는 의료인에게 감염 사실이 누설된 경험을 한 응답자는 21.5%였다.
의료기관 규모가 작을수록 차별은 심각했다. 동네의원에서 차별당했다는 사람이 39.2%로 가장 많았고, 중소병원과 대학ㆍ종합병원이 각 25.1%, 13.1%로 뒤를 이었다. 차별을 받으면서도 정작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봤다는 사람은 10명 중 3명(29.9%)에 불과했다. 병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의료 차별로 인해 ‘다른 질병으로 병원에 갈 때 감염 사실을 밝히기 어렵다’고 답한 이들도 76.2%에 달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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