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이승엽/사진=삼성
[한국스포츠경제 김주희] 프로 23년 차 이승엽(41·삼성)에게 '야구 선수라서 행복할 때'를 물었다. 이승엽은 "선수 때는 항상 행복한 것 아닌가. 스프링캠프에서는 너무 힘들어도, 시즌에 들어오면 항상 행복하다"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행복이란 '언젠가,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진리를 떠올리게 했다.
이승엽은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1995년 삼성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단한 뒤 지금까지도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 동안 지켜온 그라운드는 그에게 행복의 다른 말과도 같다. 이승엽은 "유니폼을 입고, 뛰고, 땀 흘리고 하는 모든 순간이 경기장에서 느끼는 행복이다"고 말했다. 이어 "안타를 치거나, 득점을 할 때 사람들의 함성소리도 정말 좋다. 홈런을 치고 들어왔을 때 우리 팀 선수들이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환영을 해줄 때는 너무나 짜릿하다"며 웃었다.
▲ 이승엽 프로필
"팀이 승리하면 항상 행복하다"는 그에게 가장 특별한 기억은 2002년 한국시리즈다. 당시 이승엽은 LG와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6-9로 뒤진 9회말 동점 3점 홈런을 쳤고, 이어 마해영이 솔로포를 터트려 삼성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승엽은 "다른 행복한 일도 많았지만 하나만 꼽는다면 (프로 입단 후) 첫 우승이 가장 기억난다. 마해영 선배가 끝내기 홈런을 치는 순간 너무나 짜릿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는 수치가 100점이라면 그때가 가장 근접했을 것 같다"고 회상했다.
'국민타자' 이승엽의 플레이에 팬들이 행복하듯, 이승엽도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 덕분에 행복하다. 이승엽은 "야구가 잘 안되고 있을 때 '괜찮아요, 파이팅하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힘이 된다. 어려울 때 격려의 박수를 쳐주시는 걸 들으면 '정말 더 열심히 해야겠다,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참 고맙다"고 말했다.
▲ 삼성 이승엽/사진=삼성
하지만 이제 '야구선수 이승엽'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마지막'을 앞두고 있는 만큼 지금 느끼는 행복감은 더 남다르다.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에 대해서도 이승엽은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보다 지금이 야구가 더 재미있다. 가족도 있으니 삶이 정말 더 행복해졌다"며 "과거에는 야구를 할 날이 많으니까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기 보다 그저 야구만 했다. 이제는 당장 내년부터 어떤 직업을 가질 지, 무슨 일을 할지 걱정도 되지만 기대도 되고, 설레기도 한다. 그런 부분에서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겐 행복이다"며 웃음지었다.
유니폼을 벗으면 그도 평범한 아빠다. 평생 야구에 매달려 사느라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만큼 아내,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그를 더 행복하게 한다. 이승엽은 "가족들과 함께 하고 있으면 정말 행복하다. 아들이 '야구 그만하고, 매일 같이 있으면 안되냐'고 물어볼 때는 안타깝기도 하다. 어리니까 이런 생각도 하지. 크면 같이 다니는 것도 싫어할 텐데"라며 웃은 뒤 "되도록이면 그런 때가 오기 전에 스킨십도 더 많이 하려고 한다"며 자상한 아빠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경기장을 벗어나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 대해서도 "아들과 종종 영화관에 가는 것"과 "비시즌에 가끔씩 골프를 치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를 표현하는 또 다른 말은 '바른 생활 사나이'다. 그가 정의 내린 행복 역시 이승엽 답다. 그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그게 행복이 아닐까. 야구를 할 때도 오늘 못 쳤다고 '내일도 못 칠까'를 걱정하면 표정부터 어두워진다. '오늘은 못 쳤지만 내일은 치겠지'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표정이나 생각도 밝아진다. 그게 행복이 아닐까 싶다"고 행복을 설명했다.
'더 큰 행복'을 위한 조건에도 고개를 저었다. 이승엽은 "더 이상 행복 할 수 없다. 지금이 나에겐 최선이다"고 했다.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행복을 온전히 누리고 있기에 가능한 답이다. 하지만 '예외' 조건은 있다. 이승엽은 "야구를 그만두고 나면 혹시 모르겠다. 직업도 직업이지만, 가족도 중요하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가지면 더 행복한 생활이 될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김주희 기자 juhee@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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