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중 쓰러진지 6년 지나
건보 의료비 지원 삭감으로
이 병원 저 병원 떠돌 뻔
“평생 운동만 한 우리 아들 그림 실력이 이 정도인 줄 이제 알았네요.”
신영록(30) 어머니 전은수씨가 엷게 미소 지었다. 눈가에는 살짝 눈물도 고였다. 재활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인지 치료 과정에서 아들이 그린 사과나무와 손가락 그림을 보면서다.
신영록은 6년 전 어버이날인 2011년 5월 8일 프로축구 경기 도중 갑자기 쓰러졌다. 부정맥으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소생 가능성 2%라는 희박한 확률을 뚫고 그는 46일 만에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사고 후 1년간 입원을 거쳐 2012년 가을부터 서울 강남의 한 종합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해 왔다. 하지만 병원은 재활 치료 횟수를 1주일에 네 번에서 세 번, 두 번으로 점차 줄이더니 급기야 지난 4월 초 더 이상 (치료가)안 된다고 통보했다.
완치된 환자가 장기 입원해 보험 재정을 낭비하는 걸 막기 위한 건강보험 수가 체계가 재활치료 분야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입원 후 3개월이 지나면 병원 측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할 수 있는 의료비가 40%나 삭감된다. 병원들은 만성 재활 환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2~3개월씩 병원을 옮겨 다니는 이른바 ‘재활 난민’이 양산되고 있다. 신영록은 축구 스타 출신이라 다른 환자에 비하면 그나마 큰 혜택을 받은 셈이지만 하루 아침에 치료받을 병원이 없어져 발을 동동 굴렀다. 신영록의 안타까운 사연이 본보 보도(4월 14일자 27면)로 알려진 뒤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장인 윤영설 연세대의료원 미래전략실장과 부위원장인 나영무 강서 솔병원 대표원장이 발 벗고 나섰다. 두 사람의 도움으로 신영록은 지난달부터 매주 월·목요일은 연세대의료원 재활병원, 금요일은 솔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솔병원의 스포츠 재활 치료는 무료다. 신영록의 아버지 신덕현씨는 “환경이 바뀐 게 동기부여가 됐는지 영록이가 요즘 훨씬 적극적이다”고 기뻐했다.
연세대 의료원·솔병원서 도움
“꼭 일어서겠다” 의지 되찾아
16일 솔병원에서 만난 신영록은 씩씩해 보였다.
“자, 영록아 겁내지 말고 천천히. 심호흡하고.” 나 원장의 독려를 받은 신영록이 몸의 근력과 균형을 잡아 주는 특수 재활 장비 ‘바이오덱스’에 조심스레 올랐다. 두 다리로 기계 위에 선 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꿋꿋하게 정면을 보고 버텼다.
“잘했어. 영록아, 많이 좋아졌구나.” 나 원장의 칭찬을 받은 신영록이 빙그레 웃었다. 그는 자리를 옮겨 스스로의 힘으로 천천히 사이클 페달을 밟았다. 아버지 신씨는 “발과 페달을 끈으로 묶지 않고 혼자 돌리는 건 처음 봤다”고 놀라워했다.
약 두 달 전만 해도 신영록은 자신이 더 이상 치료를 받기 어렵다는 걸 알고 시무룩했다고 한다. 어머니 전씨는 “내가 전화로 여기저기 병원을 알아보는 모습을 보더니 ‘엄마, 나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라며 걱정하더라”고 털어놨다. 아버지 신씨는 “5년이나 병원에서 재활했으니 얼마나 지겨웠겠느냐. 처음에는 병원 안 가도 되니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치료가 더 필요하다는 걸 알고 영록이도 답답해했다”고 말했다.
신영록은 요즘 다시 의욕을 찾았다. 나 원장은 “재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강한 의지와 긍정적인 생각, 불안해하지 않는 마음이다. 신영록 표정이 처음보다 훨씬 밝아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1996년 축구협회 의무분과위 멤버로 축구와 첫 인연을 맺은 나 원장은 과거 신영록이 ‘들소’처럼 그라운드를 누비던 모습을 기억했다. 나 원장은 “신영록은 예전부터 워낙 성실했다. 사실 일반인이었다면 처음 사고 후 지금처럼 회복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신영록이 앞으로 1%라도 더 좋아질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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