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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ㆍ섬ㆍ안개…상상을 더하면 진짜가 보인다

입력
2017.06.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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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찾는 이 있어 섬은 외롭지 않다. 그때마다 하나 둘씩 보태는 이야기가 쌓여 섬은 풍성해진다. 충남 태안에는 125개의 섬이 있고, 124개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근흥면 안흥외항(신진도가 교량으로 연결되면서 기존 안흥항을 대체한 항구다)에서 옹도를 돌아오는 유람선을 탔다. 신진항 ‘안스타’호는 상상력으로 태안의 섬을 둘러보는 해상유람선이다.

옹도에서 본 단도(왼쪽)과 가의도가 안개에 싸여 있다. 태안=최흥수기자
옹도에서 본 단도(왼쪽)과 가의도가 안개에 싸여 있다. 태안=최흥수기자

옹도는 육지에서 12km 떨어진 무인도다. 거주하는 주민이 없다 뿐이지 3명의 등대지기가 근무하기 때문에 엄밀히 무인도는 아니다. 그래서 태안에서는 충남 유일의 유인등대섬이라 자랑한다.

포구를 벗어난 배는 새우과자에 눈먼 갈매기 떼를 달고 곧장 옹도로 향한다. 약 30분을 달리자 안개 속에 어렴풋이 등대섬이 모습을 드러낸다. 옹기를 엎어놓은 모양이라는데 글쎄, 잘 모르겠다. 시작부터 상상력 부족이다. 옹도는 1907년 등대가 세워진 후 100여 년간 외부인의 발길이 닿지 않다가 2013년 일반에 개방했다. 선착장에 내려 가파른 계단을 두어 구비 오르면 전망대에 닿고,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면 정상이다. 크지 않은 섬에 옹기 조형물이 둘이고, 운이 좋으면 볼 수 있다는 고래(상괭이) 조각도 있다.

항아리를 엎어 놓은 모양이라는 옹도. 한눈에 와 닿지 않는 건 상상력 부족 때문일까?
항아리를 엎어 놓은 모양이라는 옹도. 한눈에 와 닿지 않는 건 상상력 부족 때문일까?
옹도에 승객을 내리는 안흥유람선.
옹도에 승객을 내리는 안흥유람선.
옹도 유인등대에서 내려다본 모습.
옹도 유인등대에서 내려다본 모습.
옹도 등대에서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
옹도 등대에서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

‘섬 동쪽으로는 단도와 가의도, 목개도, 정족도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난도, 궁시도, 병풍도, 격렬비열도가 장관을 이룬다’고 들었지만, 실제로는 구름에 가린 단도와 가의도만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지난 15일은 전국적으로 맑았지만, 안흥항은 한낮에도 짙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박은서 태안해설사(한국 최초의 여성 유람선 선장이기도 하다)는 “5~6월 태안반도는 외지인이 당황할 정도로 안개가 자주 발생한다”며 안흥팔경 중 지령모하(芝靈暮霞)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안흥항 인근 지령산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안개를 빗대 표현이다. 구름이 휘감은 가의도 풍경은 ‘옹도모하’인 셈이다.

옹도 관람을 마치고 안흥외항으로 오는 유람선에서 본 독립문바위, 코끼리바위로도 부른다.
옹도 관람을 마치고 안흥외항으로 오는 유람선에서 본 독립문바위, 코끼리바위로도 부른다.
안흥유람선에서 본 사자바위.
안흥유람선에서 본 사자바위.
마도 앞 코바위.
마도 앞 코바위.

옹도를 1시간 정도 둘러본 후 유람선은 이야기가 있는 섬으로 향한다. 이때부터는 두 눈 크게 뜨는 것 못지않게 상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한다. 태안에서 유일하게 주민들이 거주하는 가의도 남쪽 바다를 지나 유람선은 섬 동쪽에서 속도를 늦춘다. 동시에 선장의 해설이 바빠진다. 가장 먼저 돛대바위와 독립문바위다. 일직선으로 늘어선 암초로만 보이던 바위 군상이 가까이 다가설수록 뚜렷해진다. 가장 왼편에 두 개의 삼각형 모양이 돛대바위다. 자맥질하는 고래 지느러미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 같기도 하다. 다음은 오른쪽 끝자락 독립문바위,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독립문 비슷한 모양이 안 보인다. 배가 서서히 이동하자 바위 아래쪽에 커다란 구멍이 보인다. 그제서야 저거구나 싶다. 조금 더 이동하자 바다에 코를 박은 코끼리 형상으로 변한다. 코끼리바위라는 명칭이 좀 더 직설적이다.

다음 코스인 사자바위는 갈퀴 덥수룩한 수사자가 웅크리고 앉아서 고개를 뒤로 돌리는 구체적인 모습까지 상상해야 잘 보이고, 거북바위는 유람선이 조금 더 멀어져야 제 모양을 드러낸다. 마도 끝자락의 코바위는 한눈에도 두툼한 코 모양이 선명한데, 함께 있다는 부부바위는 끝내 못 찾았다. 애정결핍, 상상력 빈곤이다.

코바위 앞바다는 울돌목 다음으로 물살이 세다는 관장수도다. 바닷물이 뒤집어지는 모습이 배위에서도 뚜렷하다. 시속 8노트(약 15km)로 물살이 거센 이곳은 난파선의 공동무덤이다. 2009년부터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수중 탐사로 옛 선박 4척을 끌어올렸고, 진흙 바닥에서 옥빛 청자를 비롯한 고려시대 유물 300여점과 조선시대 유물 100여점도 건져 올렸다. 신진도에는 현재 마도유물전시관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다.

관장수도를 끝으로 유람선은 안흥외항으로 돌아온다. 갈 때는 30분이지만, 올 때는 1시간 넘게 걸린다. 유람선 여행에 안흥팔경의 상상력을 보태면 효과가 배가 된다. 장마철 안흥항 앞 3개 섬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신기루 현상(삼도신루ㆍ三島蜃樓), 마도 뒤 여자바위 꼭대기에서 즐기는 낙조 풍경(곡암낙조ㆍ曲岩落照), 만선을 이룬 배들이 저녁 무렵 관장수도 주변으로 귀선하는 모습(관정귀범ㆍ串汀歸帆), 신진도 백사장에 괭이갈매기가 내려앉은 모습(장사백구ㆍ長沙白鷗), 신진도 능허대 위로 떠오르는 가을 달빛(능허추월ㆍ凌墟秋月) 등은 때만 잘 맞으면 요즘도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단 안흥항 앞에 꽃이 핀 것처럼 남포등을 켜놓고 조기잡이 하는 모습(남포어화ㆍ南浦漁火)은 안타깝게도 지금은 사라졌다. 안흥팔경 중 상상력 최고는 태국종성(泰國鐘聲)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태국사의 타종소리까지 풍경에 넣었으니 안흥 주민들의 멋스러움이 엿보인다. 태국사는 안흥구항 뒤편 안흥성과 바로 붙어 있다.

안흥유람선 승선요금은 1시간30분 코스 1만5,000원, 옹도 하선 2시간40분 코스 2만3,000원이다.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지사장 김세만)는 서해안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아름다운 섬과 해변에 즐길 거리까지 갖춘 태안을 여름휴가지로 추천했다.

태안=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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