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의 반려배려]
서울대공원 해양관에서 홀로 생활하던 큰돌고래 ‘태지’가 20일 제주 사설 수족관인 퍼시픽랜드로 이동했다. 지난 9년간 같이 생활하던 남방큰돌고래 ‘금등이’와 ‘대포’는 제주 앞바다 가두리에서 자연적응훈련에 한창인데 태지는 그간 동물단체들이 폐쇄를 외쳤던 제주의 수족관에서 생활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사실 태지의 거취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전문가들에게 물어봐도 그야말로 ‘노답’이었다. 우선 태지는 일본 와카야마현 다이지에서 잡혀왔기 때문에 종과 서식지가 달라 제주 방류에서 제외됐다. 그렇다고 돌고래 상업포획이 가능한 일본 다이지로 돌려보낼 수도 없고 잡힐지도 모르는 일본 바다에 풀어주자고 훈련과 이송비용을 마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공공기관인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이 대안으로 꼽혔지만 울산 남구청이 위탁을 거부하면서 태지는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서울대공원에 태지를 혼자 두는 것도 검토 대상에 포함됐지만 태지가 신경질적 반응뿐 아니라 정형행동까지 보일 정도로 스트레스가 컸다.
결국 태지에게 남은 건 수익을 목적으로 돌고래 쇼를 하는 사설 수족관들뿐이었다. 큰돌고래들이 있는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 마린파크, 제주 퍼시픽랜드가 거론됐지만 그나마 수족관 공간이 넓고, 5개월이라는 한정된 조건이지만 위탁을 자처한 퍼시픽랜드로 결정이 났다.
서울대공원은 “제주 퍼시픽랜드는 1986년부터 돌고래를 관리해온 곳이며 돌고래 관리능력과 사육환경은 어느 시설에도 뒤지지 않아 태지의 건강 회복과 복지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미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 등 불법 포획된 돌고래들을 동원해 공연에 투입하다 돌고래들을 몰수당한 수족관에 태지를 보낸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이야기하며 안도할 때가 아니다. 최선을 운운하기 이전에 태지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거취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반성하고 5개월이라는 시간을 번만큼 앞으로 태지를 위한 노력에 대해 설명하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남방큰돌고래 한 마리, 큰돌고래 한 마리, 남방큰돌고래와 큰돌고래 혼종 두 마리를 보유하고 있는 퍼시픽랜드는 지금도 하루에 네 차례 조련사와의 수중 돌고래쇼를 하며, 수족관 내에서 남방큰돌고래와 큰돌고래를 번식시켜 혼혈 돌고래들이 태어나고 있는 곳이다. 태지가 퍼시픽랜드에서 쇼에 동원되지 않고 서울대공원 소유로 살아갈 수 있는 기간은 오는 11월말까지다. 이는 바꿔 말하면 5개월 이후에는 변동이 없으면 태지는 퍼시픽랜드의 소유가 되며, 다른 네 마리와 마찬가지로 쇼돌고래로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으로선 태지가 제주에서, 그나마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무사히 적응하기를 바랄 뿐이다. 태지가 버텨주는 동안 정부와 동물·환경보호단체, 시민들은 태지를 비롯해 국내 수족관에 남겨진 돌고래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이들을 위한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동물보호활동가들은 정부가 나선다면 해양생물보호구역이나 환경보전해역 등에 해양보호소인 바다쉼터를 만드는 게 먼 얘기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또 다른 수족관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 태지가 5개월 뒤 쇼 돌고래가 될 것이냐, 국내 처음으로 바다쉼터로 가게 될 것이냐는 이제 우리 손에 달렸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태지 제주도 도착 영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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