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북한 비난 여론 비등
의회 지도자들도 초당적 응징 주장… 당장 북한 여행 금지 조치 임박
오토 웜비어(22)의 사망으로 미국의 대북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실낱 같던 북미 대화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지고,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강력한 압박이 예상된다.
대통령부터 대북 비난에 앞장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내놓은 성명에서 “북한에 의한 희생자를 애도하면서 미국은 다시 한번 북한 정권의 야만성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또 “오토의 불행한 운명은, 무고한 사람들을 상대로 법규범과 기본적 인간의 품위를 존중하지 않는 정권들에 의해 저질러진 이런 비극을 예방하려는 우리 정부의 결심을 더욱 굳게 한다”고 강조했다. 의회 지도자들은 분노를 감추지 않고 초당파적으로 대북 응징을 주장하고 있다. 마르코 루비오(공화ㆍ플로리다) 상원의원은 “북한은 살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셀던 화이트하우스(민주ㆍ로드아일랜드) 상원의원은 “미 전역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 것”이라며 대북 제재 강화를 촉구했다. 로브 포트맨(공화ㆍ오하이오), 존 매케인(공화ㆍ애리조나) 의원도 웜비어의 죽음을 ‘김정은 정권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하고, 트럼프 행정부에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당장 미국 시민의 북한 여행에 대해 사실상 금지조치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애덤 쉬프(민주ㆍ캘리포니아) 의원 등이 ‘북한 여행금지법’을 발의하는 등 하원에서는 이미 관련 입법이 논의 중이다. 상원에서 법안 통과가 안되더라도 미 국무부가 대통령 행정명령 형태로 북한 여행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의회에 출석, “관련 사항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보복 차원의 조치도 예상된다. 군사적 대응은 불가능한 만큼 북한 핵ㆍ미사일 포기를 유도하기 위해 김정은 정권을 압박하려던 방안들의 강도를 높이거나 시행시기를 앞당길 가능성이 크다. 이달 중 북한을 9년 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지난달 미 의회가 ‘대북 차단 및 제재 현대화법’을 통과시키면서 국무부에 재지정을 촉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 체감할 정도로 피해는 없지만, 국제적 평판이 악화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미국, 이미 가혹행위 관련 정보 확보… 사실 확인 땐 대응 수위 높여
중국에 대북 교역 중단 요청하고 ‘세컨더리 보이콧’ 가능성도
북한 당국의 가혹행위가 확인된다면, 미국의 대응 수위는 한층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은 가혹행위 관련 정보를 확보한 상태이다. 추가 조사에서 가혹행위가 사실로 확인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원유를 포함한 대북 교역 중단 등을 중국에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미온적으로 나온다면 중국의 협조를 기다리지 않고, 미국이 독자제재에 바로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대북거래 중국 기업ㆍ개인에 대해 금융ㆍ통상 제재를 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조치가 가장 먼저 취해질 전망이다. 특히 유가족이 웜비어를 꾀어 북한 여행을 유도한 업체로 지목한 중국의 ‘영 파이오니어 여행사’가 첫 번째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압박은 북한의 대응 여부에 따라 더 강해질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핵심 변수 중 하나는 아직 북한에 억류된 3명의 다른 미국 시민이다. 틸러슨 장관이 이날 성명에서도 밝혔듯이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관심사 중 하나는 김동철 목사, 김학송, 김상덕씨 등 억류된 미국인의 조속한 석방이다. 북한이 억류자 3명의 석방 가능성을 내비치며 웜비어 사태의 원만한 처리를 요구한다면 미국이 태도를 바꾸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북한은 북미관계에서 돌파구를 모색하는 단계에서 전 대통령 등 미국 측 고위 인사의 방북을 통해 억류자를 석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물론 최악의 상황도 가능하다. 북한이 압박에 맞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나 6차 핵실험 등 도발에 나선다면 한반도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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