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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강경화라는 덧차원

입력
2017.06.2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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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4차원 시공간(시간 1차원과 공간 3차원) 속에 살고 있다. 왜 하필 4차원일까? 과학자들도 잘 모른다. 공간차원이 더 있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테오도르 칼루자와 오스카 클라인은 1920년대에 5차원 시공간을 도입해 중력과 전자기력을 통합하려고 했다. 4차원 시공간에 부가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을 덧차원(extra dimension)이라고 한다.

만물의 근원이 1차원적인 끈이라는 끈이론에서는 6개의 덧차원이 필요하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가느다란 실을 멀리서 보면 1차원의 물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두께 방향의 차원을 확인할 수 있다. 원래 우리 우주의 시공간이 10차원이고 그 중 공간의 6차원이 대단히 작게 말려 있다면 우리가 덧차원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1998년과 1999년 일련의 과학자들은 덧차원의 존재가 물리학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우주에는 전자기력, 중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 등 네 가지의 근본적인 힘이 있다. 네 가지 힘 중에서 중력이 압도적으로 약하다. 중력에 비하면 전자기력은 대략 10^40배 정도 강하다. 중력이 왜 이렇게 약할까 하는 문제를 ‘위계문제’라고 한다.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위계문제가 골치 아픈 상황을 연출한다. 모든 입자는 양자역학의 원리에 따라 끊임없이 입자들이 생기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자신의 질량이 보정을 받는다. 지난 2012년 발견된 힉스 입자는 그 특성상 다른 입자들에 비해 질량이 보정되는 정도가 대단히 커서 위계문제의 큰 격차가 질량보정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렇게 보정된 값은 실제 관측한 힉스 입자의 질량보다 천문학적으로 크기 때문에, 애초에 우리 우주에서는 천문학적인 보정이 정확하게 상쇄되는 미세조정이 작동했어야만 했다. 과학자들은 이런 식의 미세조정이 대단히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이론이 제안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덧차원 이론이다. 만약 덧차원이 있다면 전체 시공간에서의 중력은 그리 약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사는 4차원 시공간에서 중력이 약한 이유는 다른 차원으로 중력이 빠져 나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된다.

과학자들이 덧차원에 열광했던 이유는 덧차원이 무결점의 완벽한 이론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덧차원 자체가 전혀 새롭지도 않았다. 20세기 말에 다시 흥행한 이유는 분명 위계문제 해결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과학 이론이 그렇다. 갑자기 하늘에서 완전무결한 이론이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 당대의 학계가 직면한 문제를 치열하게 해결하는 과정에서 좋은 이론이 나온다. 그리고 오로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가 일차적으로 중요한 선택기준이다. 기존의 과학체계와 치명적으로 충돌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좋은 과학이론을 만드는 원동력은 좋은 질문과 좋은 과제설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첫 내각 구성이 난항을 겪으면서, 왜 똑같은 위장전입을 두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느냐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흥미로운 것은 여론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공직후보자의 위장전입이나 논문표절 등 도덕성의 문제가 불거지면 당사자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지금은 오히려 여론이 공직후보자를 옹호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물론 따져보면 위장전입이나 논문 표절의 ‘질과 내용’이 다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검찰개혁이나 재벌개혁이라는 아젠다 자체가 너무나 시의적절했고 (이는 또한 촛불혁명의 정언명령이기도 하다.) 해당 공직에 최상의 적임자를 임명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공직후보자를 평가할 때 절대적인 기준으로서의 도덕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과업을 해결할 수 있는 자질 중의 하나로서 도덕성을 보기 시작했다.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평범한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수준이 아니라면, 재벌을 개혁하고 검찰을 개혁하고 외교를 혁신할 수 있는 인물에게 한 번 기회를 주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광장의 촛불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박수로 화답하는 정도를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공직후보자를 보호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국정과제가 대통령이나 특정 정파만의 과제가 아니라 모순의 시대를 함께 헤쳐 온 우리 모두의 과업이기 때문이다. 과학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좋은 질문과 올바른 과제설정이 위력을 발휘한 셈이다.

한 가지 더.

1999년 5차원 이론으로 위계문제의 해법을 제시했던 리사 랜덜은 프린스턴 대 물리학과에서 종신교수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며 하버드 대 물리학과에서 종신교수직을 받은 최초의 여성 이론물리학자이다. 신임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한국에서 ‘여성 최초’의 타이틀을 새로이 개척하게 되었다. 자질 있는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함은 과학에서나 정치에서나 매한가지이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촛불혁명’과 ‘여성 최초’의 기조가 꾸준히 유지되길 기대해 본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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